송전탑 갈등 아픔 겪은 도시를 가다
송전탑 갈등 아픔 겪은 도시를 가다
  • 양철우
  • 승인 2013.09.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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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돌 맞더라도 솔직한 대화 나서야”
밀양 송전탑 갈등의 시계추는 8년 동안이나 쉴 새 없이 돌아가면서 밀양의 정체성마저 감염을 시키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충절의 고장이 님비의 고장으로 낙인찍히고, 지역사회의 민심은 두 동강이 났다. 이젠, 돌을 맞더라도 갈등의 시계추 앞에서 누군가는 ‘멈춤’을 이야기해야 한다. 나아가 한 발짝씩 물러서야 한다. ‘물러섬’이 없이 나아가기만을 바란다면 대화도 있을 수 없고 진척도 바랄 수 없다. 이 사태를 조명하기 위해 밀양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사례를 취재했다./편집자 주



지난 5일 765㎸ 송전탑 때문에 첨예한 갈등을 겪었던 경기도 용인시와 광주시, 안성시 등을 둘러봤다. ‘이들은 송전탑 갈등을 어떻게 풀었을까’, ‘밀양 송전탑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라는 등의 목적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이 지역은 765㎸ 신안성변전소~신가평변전소 구간으로 수도권 및 경기도 지역의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해 모두 154기의 송전탑이 건설됐다. 지난 2004년 착공해 2010년 4월께 준공했으며, 이 가운데 용인시에는 39기가, 광주시에는 62기가 세워졌다.

송전탑은 평균 100m 높이에, 중량이 자그마치 120톤이나 나가는 소의 머리를 닮은 우두형 강관철탑으로 500m에 걸쳐 늘어선 모습은 기자를 압도했다.

광주시 도척면은 5년여 동안의 갈등 속에 2년 반 동안에만 50차례 이상의 집회를 열며 한전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지역이다. 마지막에는 주민투표 끝에 한전과 극적으로 타협하며 평온을 찾았다. 이 지역에는 광주시 송전탑 가운데 30%가량 차지하는 19기가 건설됐다.

도척면 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A씨를 만났다. A씨에게 “밀양송전탑 갈등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A씨는 “아름답고 조용한 밀양이 우리나라에서 님비현상이 가장 심회되고 있는 지역으로 오해받고 있어 우선 안타깝다”며 “우리도 수년간 싸웠지만, 백지화와 지중화, 노선 변경은 100%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그리고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의 리더는 돌을 맞더라도 이제 체면을 버리고 솔직하게 한전과 소통하는 길만이 주민들을 위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체면 때문에 주장을 굽히지 않고, 체면 때문에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게 A씨가 주장한 뜻이었다.

A씨는 “반대대책위 리더는 체면을 버리고 솔직하게 한전과 대화에 임해서 우리가 얻지 못한 충분한 보상과 후손들을 위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더 큰 것을 얻어라”고 충고했다. 이어서 “우리는 몰라서 못했고, 밀양은 우리보다 훨씬 우월한 위치를 확보했으므로 한전으로부터 현실적으로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도 말했다.

A씨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았다. 당시에 출석부로 체크도 하면서 내 이웃과 어르신, 친구들을 고생 시켜서 후회스럽다”며 “당시 갈등 상황 때문에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송전탑과 불과 100여m 이내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이 부근에 새 주택을 짓고 있다.

용인시 양지면의 반대대책위 관계자 B씨도 만났다. 양지면도 송전탑 17기가 건설됐는데, 마을전체를 송전탑이 감싸면서 2년 이상 갈등을 겪었다.

B씨는 기자를 만나자 마자 대뜸 “밀양 송전탑 해결을 위해선 외부세력을 배척해야 한다”며 “평생을 살고 계속 살아갈 사람이 주(主)가 돼야지, 외부세력이 주가 되면 사후에 상처가 커진다”고 말했다. B씨는 “나랏일은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가 없다. 바꾸기 위해 법적 투쟁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이지만 결국 다 졌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며 “그래서 우리는 2년 이상의 갈등을 풀고 한전과 머리를 맞댔다”고 당시 과정을 설명했다.

B씨 취재를 마치고 운전대를 밀양으로 돌렸다. 3시간 30분 이상은 달려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도척면 A·B씨의 말이 귓가에 다시 속삭인다. ‘체면을 버려라’, ‘돌을 맞더라도 솔직해져라’, ‘외부세력과 단절하라’. 밀양/양철우기자 myang@gnnews.co.kr



용인시 양지면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송전탑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우두형 송전탑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에 세워진 우두형 송전탑. 100m높이에 중량만도 120톤에 이른다.
송전탑
우두형 송전탑이 광주시 도척면의 마을 중간을 관통하고 있다.
송전탑
우두형 송전탑이 광주시 도척면을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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