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들도 시대의 변화가 왔네요
세시풍속들도 시대의 변화가 왔네요
  • 경남일보
  • 승인 2013.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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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한국국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말에 고속도로가 벌초를 다녀 온 차로 고생을 했단다. 사람들이 고생을 하는 것이지 고속도로가 고생을 했다니 웃지 못할 일이지만 익숙한 소리다. 벌초는 백중 이후인 7월 말부터 음력 팔월 추석 이전에 조상의 묘에 자란 잡초를 베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세시풍속 중 하나이다. 제주도는 모둠벌초라고 해서 조상들의 묘를 찾아 가문의 후손들이 모두 모여 함께하는 벌초로 제법 큰 행사로 여길 정도이고, 산소의 깨끗함으로 그 집안이 잘되고 못됨을 기준 삼는다고 하니 조상에 대한 큰 예의인 셈이다. 최근 벌초를 하러 갔다 벌에 쏘여 사망했다는 뉴스보도도 심심치 않게 듣게 되고, 또 벌초대행에 대한 정보를 찾는 이가 해마다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도 종종 듣게 된다.

매년 우리집도 추석이 가까워지는 이맘때 시골에 사시는 아저씨가 이 일을 도맡아봐 주시고 계셔서 벌초에 드는 비용만을 지불한 후 정리된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산소를 둘러보면 벌초가 마무리가 되어 그렇게 큰 부담으로 여겨지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벌초와 산소를 누가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은 몇 해 전부터이다. 팔십에 가까운 아버지가 아직은 살아계셔서 관리를 하고 계시지만 부산에서 충남 공주까지 다니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고,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자식들이 한 번 모이기도 힘든데다 직장 일을 뒤로하고 시간 내어 산소를 찾는 일도 자꾸 어려워지기 시작하고, 손자손녀들이 과연 몇 번이나 산소에 가봐서 기억하고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까지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은 9년 전에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를 어디다 모실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였다. 선산이 있지만 돌아가신 엄마는 자식들이 자주 와서 자신을 볼 수 있게 부산에 있는 공원묘지에다 자신의 자리를 잡아달라고 했었다.

집안의 제사나 산소 등의 관리를 보통은 그 집안의 장남이나 장손이 맡아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목사가 된 우리집 장남은 어느 순간부터 이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그리고 무조건 아들과 장남에게만 부모에 대한 책임과 조상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고 하기엔 딸들에게도 아들 못지않은 혜택을 받아온 자식인지라 이제는 아들과 딸을 구분한다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시대가 변한 만큼 제사나 명절에 대한 개념이 변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 고유의 세시풍속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자식들이 먼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명절이 다가올수록 집안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무거운 마음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듯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먼저 결단을 내려 자식들의 짐을 해결해 주면 고마울 것인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보면 명절 이후에 우리가 듣게 되는 명절스트레스, 명절 이혼 등의 가족들 간의 불협화음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작년에 몸이 너무 안 좋아 추석과 설 명절 음식을 할 처지가 못 되어서 명절음식 대부분을 백화점에서 사서 치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그렇게 하라고 의견을 내주셔서 못 이기는 척하고 그렇게 한 것이 이젠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버렸다. 처음엔 음식을 사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죄의식이 제법 컸지만 대도시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니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음식을 사서 하다 보니 음식을 하는 시간이 절약되고, 그 절약된 시간에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거나 목욕을 하러 가게 되어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하나의 이벤트가 됐다. 음식 솜씨 없는 우리가 한 음식을 며칠씩 먹는 가족들의 고역도 줄었고, 버리는 음식 없이 명절 내내 조금은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나라 고유의 세시풍속을 없앨 수 없다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조금은 변화된 모습으로 새로운 가족의 문화로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한다.
이한우 (한국국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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