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국물에 깃든 깊은 맛 "이 맛이 갈비다"
맑은 국물에 깃든 깊은 맛 "이 맛이 갈비다"
  • 이용우
  • 승인 201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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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독특한 먹거리를 찾아서 <함양 안의갈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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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찜과 갈비탕 차림상.
 
 
농업을 주업으로 삼던 한민족에게 소는 가축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동네 장정 한 명보다 더 큰 노동력을 제공했고, 일 년에 한 번씩 낳는 송아지는 대학 등록금의 유일한 밑천이었고, 농가의 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평생 순종하며 우직하게 일하다 죽어서도 육신으로 봉사하는 존재, 소는 그만큼 귀중한 존재로 인간과 정을 나누었다. 우리 민족에게 소는 가족과 마찬가지였고, 정부에서도 정책적으로 소를 함부로 도살하거나 식용하지 못하게 했다. 더구나 소는 머리부터 꼬리, 내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수입 농산물이 넘쳐나는 시대에, 여전히 한우는 우리에게 최고의 육질과 맛을 자랑하는 고기이다. 순종 임금이 눈물을 흘리며 먹은 소고기 탕에는 나라 잃은 조선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면, 안의 갈비탕은 본질을 잃지 않았던 선비의 기개와 자존심이 담겨있다. 순종의 소고기 탕은 고추기름, 토란대, 고사리의 생명력을 담은 육개장이었고, 안의 갈비탕은 맑고 시원한 국물로 고기국물 특유의 잡내가 전혀 없다. 콩나물국 같이 담백한 맛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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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찜.


◇대도시의 맛집을 뛰어넘는 위상

함양군의 안의면은 ‘안의 갈비탕’으로 유명하다. 인구수가 5000명도 채 되지 않는 농촌의 작은 면 이름이 붙지만, 100만이 넘는 대도시의 이름을 붙이는 ‘수원 갈비’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인구수에서 밀려 덜 알려졌을지 몰라도 맛과 질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안의갈비는 한우갈비로 찜과 탕을 낸다. 갈비는 육우나 수입산 쇠고기를 쓰는 것은 아닌지 잠깐 의심이 들만큼 푸짐하다. 갈비탕은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데 쇠고기가 갈비에 말린 채 그대로 나오는 것이 어느 지역에서 볼 수 없는 가장 큰 특징이다. 갈비대는 쇠고기 사이로 박힌 게 2개 혹은 3개일 정도로 크다. 양파, 당근, 오이, 파 등등의 야채 역시 큼직막한 크기로, 손이 큰 종가집 맏며느리가 인심 쓰듯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넉넉하다.

가위로 자르지 않으면 먹기 힘들 정도로 큰 갈비살을 한 입 크게 베어 물면 한우 특유의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진다. “그래, 이게 갈비다. 지금까지 먹어본 갈비는 모두 짝퉁이다”라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 갈 정도로 황홀한 맛이 입안 가득히 퍼져나간다.

갈비찜은 굽는 것이 아니라 쪄내서 그런지 육질이 녹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정도로 부드럽다. 부드럽게 씹히면서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갈비탕과 갈비찜은 비슷한 크기의 갈비가 들어간다. 갈비는 갈비대로, 국물은 국물대로 각각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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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군 안의면 갈비탕골목 이정표. 시외버스터미널 앞 광풍루 길을 중심으로 6 곳이 맥을 이어가고 있다.


◇유래

안의 갈비탕은 5일 장이 서기 하루 전, 가마솥에 장작으로 24시간을 고아서 안의 장날에 내 놓는다. 그러다보니 안의갈비탕은 특별히 유래라고 전해지는 것이 없다. 갈비탕을 유난히 잘 끓였던 해장국집의 할머니가 언제부터가 끓여 팔기 시작한 것이 갈비탕이 원조다. 찜은 갈비탕이 인기를 얻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특이한 점은 갈비를 말할 때 함양군 안의 밖의 타 지역 사람들은 ‘안의 갈비찜’을, 안의 사람들은 ‘안의 갈비탕’을 일컫는다.

안의 갈비탕이 유명해진 데는 한 지방 부군수의 역할이 컸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갈비탕의 맛에 반한 거창 부군수가 점심때만 되면 출근하다시피 안의면까지 와서 밥을 먹자, 이를 알게 된 언론에서 비난기사를 실었는데, 그 덕에 안의 갈비탕이 유명세를 타게 된 셈이다.

안의 향토사학자 이철수씨는 저서 ‘안의사람 맞쏘’에서 60년대 가장 유명했던 음식으로 다수 마을의 김말순 할머니가 끓인 갈비탕을 회상하고 있다. 그러나 김 할머니의 가게는 1980년께 안의면이 소도읍을 정리할 때 소액을 보상받고 간판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김 할머니의 갈비탕은 여기서 대가 끊어진 것은 아니다. 당시 같은 마을에 살던 부부가 식당을 열 때 할머니의 며느리가 주방장으로 들어갔고, 그때부터 10년간 이 식당에서 국물 내는 법을 이들 부부에게 전수해 맥이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게 안의갈비탕의 유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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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탕을 우려내는 모습.


◇갈비탕과 갈비찜 뭐가 더 맛있나

‘안의 갈비탕’은 보통의 입맛으로는 그 깊은 맛을 구별해 낼 수가 없다. 오래도록 푹 고아야 제대로 된 국물 맛을 볼 수가 있고, 고기 특유의 잡내가 없이 콩나물국 마냥 맑고 투명해야 시원한 국물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인들은 갈비탕보다는 달콤하고 짭짤한 갈비찜의 맛을 가려내기가 더 쉽기 때문에 ‘안의 갈비찜’을 많이 찾는다.

안의 갈비는 4~5년생 한우 암소의 갈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칼로 기름을 대강 제거한다. 이 고기를 한번 삶아낸 다음, 삶은 물은 버리고 연해진 지방을 다시 잘라낸다. 쇠고기 기름은 맛도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손질한 고기를 다시 끓이면 갈비탕이 되고, 삶은 고기에 마늘, 당근, 오이, 간장을 넣어 찌면 갈비찜이 된다. 갈비찜의 맛이 고급스럽고 풍부하다면, 갈비탕은 따로 다대기를 넣지 않아도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밑반찬이 8가지 가량 따라 나오는데 청국장으로 만든 반찬이 일품이다. 안의 사람들은 어떨 땐 갈비탕보다는 밑반찬인 청국장을 먹기 위해 오는 경우도 있으며, 가게에 따라 비지를 내어 놓는 곳도 있다.

지금도 안의 사람들은 몸이 부실하거나 아플 때 어머니들이 냄비를 들고 갈비탕을 사러가기도 한다. 시원한 갈비탕 국물을 마시면 어쩐지 몸이 빨리 낫는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안의가 소고기 요리로 유명한 이유는 ‘안의현’ 이었을 때 소고기 같은 비싼 음식을 함양, 거창에서 먹으러 왔기 때문이다.

안의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안의 사람’의 자부심은 ‘안의 갈비탕’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모양새다. 마치 순종이 소고기를 만든 육개장을 먹으면서 나라 잃은 비운의 눈물을 흘렸듯, 안의 사람들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갈비탕 국물로 음미하고 있다. 이제, 안의 갈비탕은 안의와 함양에서 역사가 되었다. 함양/이용우기자



경남 함양 맛집 ‘안의 갈비탕’
◎ 주요메뉴 : 갈비탕, 갈비찜, 매운갈비찜
◎ 오픈시간 : 10:00~20:00
◎ 함양군 안의면 광풍로 길 중심으로 6곳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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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갈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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