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태 교수의 건강이야기
정운태 교수의 건강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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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과 친구하기

작년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막내딸과 함께 어린이 도서관에 간 적이 있었다. 아이와 함께 저학년 코너의 책을 훑어보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강아지 똥’, ‘똥벼락’, ‘아기똥 그림책’, ‘똥 찾아가세요.’, ‘똥은 참 대단해’, ‘누구 똥이야’. ‘아니, 똥과 관련된 책이 왜 이렇게 많지?’ 이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주변에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저마다 책을 고르거나 보고 있었는데, 어림잡아 열 명 이상의 아이들이 똥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키득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왜 아이들은 똥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을까?

사실 진료를 하다 보면 똥과 관련해서 내원하는 분들이 참 많다. 1주일 이상 똥을 못 누었다는 20대 아가씨, 밥만 먹으면 화장실 쫓아간다는 30대 아주머니, 구린내가 너무 지독하다는 40대 아저씨, 최근 들어 갑자기 똥이 가늘어졌다는 50대 아저씨 등등.

사람은, 아니, 무언가를 먹고 사는 생물체들은 모두 예외 없이 똥이라는 배설물을 내보내야만 한다. 먹은 만큼 내 보낼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똥은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수많은 세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누구나 싫어한다. 심지어 혐오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똥에는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작년에 나온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도 임금이 눈 똥은 매번 내의원으로 보내져 냄새와 굳기, 색깔은 어떤지, 심지어 맛까지 보고 임금의 건강을 살핀다는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건강검진 수단이 발달한 요즘이야 굳이 맛까지 볼 필요는 없지만 자기가 눈 똥을 보고, 맡는 정도로 자신의 기초 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혐오감까지 가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똥의 구성은 수분이 75~80%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소화되고 남은 음식 잔류물이 나머지 1/3, 수많은 세균이 나머지 1/3을 차지하며, 그 외 채 흡수되지 못한 단백질, 지방, 인산염과 같은 무기질 등이 소량씩 포함되어 있다. 똥의 색깔은 황갈색을 띠는 것이 보통인데, 그 이유는 간에서 생성되어 담낭(쓸개)에 저장되었다가 소장으로 배출되는 빌리루빈의 대사산물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섭취한 음식의 종류에 따라 연황색에서부터 흑갈색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며, 이러한 색깔도 정상에 해당한다. 만일 똥이 흰색 또는 회색으로 나올 경우 빌리루빈 대사와 관련된 효소가 없거나, 담도염, 담도암에 의한 담도 폐쇄를 의심해 볼 수 있으며, 짜장과 유사한 흑색으로 나올 경우 위장관 내 출혈이 의심된다. 흑색 변은 위장관 출혈 외에도 철분제제를 복용하는 중이거나 선지와 같은 피 종류의 음식을 먹은 후에도 나타날 수 있다. 만성 췌장염, 췌장암 등과 같은 췌장 질환, 실리악 스프루, 위플씨 병, 아밀로이드증 등과 같은 소장점막질환, 람블 편모충, 분선충, 장모세선충 등과 같은 기생충성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똥에 기름이 섞여 나오는 지방변을 볼 수 있다. 보통과 다르게 갑자기 똥이 가늘게 나온다면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고, 장기간 무른 변을 본다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대부분이지만 드물게 장결핵,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등 만성 염증성 대장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장 내에는 400여 종의 가스가 들어있는데, 똥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는 주로 암모니아, 인돌, 스카톨, 황화수소 등에 의한 것이다. 고기에는 황화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육식을 많이 하는 경우에는 구린내가 더욱 지독해지는데, 구린내가 아주 지독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식습관을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한다. 똥의 색이 검으면서 칼칼하고, 금속성의 냄새가 난다면 위장관 출혈이 있음을 의미한다.

똥은 물론 악취가 나고 불결하여 누구나 좋아하지 않으며, 심지어 금기시되는 대상에 가깝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만들어져 나온 소중한 똥을 보지도, 냄새 맡지도 않고 그저 배척해 버린다면 어쩌면 자신의 중대한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금기시하는 이유로 오히려 더 흥미가 있고, 똥 이야기에 열중하는지 모른다. 우리 어른들도 똥에 대해 무작정 손사래 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눈 똥과는 친구가 되어보는 것이 어떨까?

/경상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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