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 예찬
곡선 예찬
  • 경남일보
  • 승인 201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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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희지 (소설가)
추석 연휴가 끝났다. 신나게 먹고 마신 덕에 배와 허리 주변이 넉넉해진 느낌이다. 방치해 두었던 훌라후프를 꺼내어 돌려본다. 이렇게라도 운동을 해야 내 몸의 무디어진 곡선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어서다.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일까, 근간엔 곡선에 대한 열망이 부쩍 강해졌다. 오죽하면 자동차를 달릴 때도 잘 닦인 새 도로보다는 옛길을 찾아 길을 잡고, 직선의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보다는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 앞에서 발길이 멈춰질까.

옛길이 정다운 건 가는 곳마다 모롱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 모롱이 뒤에는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다. 모롱이 진 옛길을 달리다보면 내 무디어져 가던 호기심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강물 또한 다르지 않다. 강물은 발원하였다가 바다로 흘러 들기 까지 끝도 없는 곡선을 만들어낸다. 산허리를 돌고 바위를 에두르며 흐르다 모래톱을 만드는 과정들, 그리하여 긴 노정의 피로를 갈대숲에 잠시 부렸다가 대양으로 흘러들면서도 강물은 곡선을 만들어내어 인간들에게 직선으로 내달린 삶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 연휴 나는 곡선을 찾아 길을 떠났다가 섬진강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김용택 시인이 절절이 노래한 ‘섬진강’이라는 시가 절로 읊조려졌다.

한데, 다음 날 만난 낙동강의 보 앞에서 나는 아연 실색하고 말았다. 강물은 마치 황녹색 가루를 뿌려놓은 듯 녹조가 번져가고 있었다. 아, 이게 자연의 흐름을 역행한 결과구나. 환경부에서는 녹조를 일러 계속되는 높은 수온주 때문이라지만 좋은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가꾸려는 사람들에게 그 말은 낯가리고 아웅하기에 지나지 않는 말이다. 자연의 형태를 휘감아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법이다. 4대강 정비사업의 애초 목적이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것’이었다면 강 깊이를 확보하는 준설작업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탐욕이 이상을 담보할 때 합리성은 본디의 의미를 왜곡하게 되는 것을 나는 녹조현상으로 앓고 있는 낙동강을 보며 절감하였다.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말했다. 곡선은 신이 만들었고, 직선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지구나이를 시계에 비유하면 지금 지구는 55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남아 있는 곡선을 보존하고 사라진 55분을 되찾으려면 곡선을 되살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곡선은 신이 만들었으나 인간은 그 곡선을 이용해 새로운 별을 탄생시켰다’는 말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최미희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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