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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청 닳고닳은 기원에 절로 숙여지는 마음(45)산중암자 의상암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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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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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물러 날 줄 아는 것 치고는 계절만큼이나 정직하고 정확한 것도 없는 모양이다. 산천초목까지 녹일 듯이 달구더니만 원도 없이 한도 없이 집착도 없이, 미련도 두지 않고 그저 떠나갔다. 바람 한 점 없어도 한 순간에 꽃잎을 흩날리고 홀연히 떠나는 연꽃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떠나는 게 계절인가보다. 삼복염천의 지난여름은 예년 같지 않아 쉬이 물러 갈 것 같지가 않더니만 어느 날 새벽녘에 온다간다 말도 없이 서늘한 빈자리만 남기고 떠났다. 극성스런 맹위를 떨치다 홀연히 떠나고 나니까 왠지 모르게 야릇한 아쉬움까지 느끼게 한다. 아무런 준비도 할 겨를이 없이 얼떨결에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니 마치 사차원에라도 들어선 듯이 어리둥절하다. 어수선하게 헝클어지고 멍하니 느슨해져버린 심신을 추슬러야겠다 싶어 산길이 굽이진 산중암자를 찾아 길을 나섰다.

원효와 의상이 중생제도의 화두를 놓고 명주실의 새를 가르듯이 화엄법리를 논증하며 중생들의 길을 찾던 벽발산 의상암을 찾아서 35번 고속도로의 동고성 IC를 빠져나와 통영시 광도면 안정산업공단 쪽으로 차를 몰았다. 안정공단 초입의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여 통영 쪽으로 차를 돌리자 이내 천년고찰 안정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덩그렇게 섰다. 안내판이 일러주는 대로 마을길을 잠시 접어들면 안정골의 작은 마을이 제마다 멋스런 현대식 집들로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있다. 숲도 있고 꽃도 있고 마당까지 있어 넉넉하고 포근한 정감속의 전원주택들은 평화로움이 가득한데 마을 날머리를 벗어나자 안정사의 널따란 주차장이 길손을 반긴다.

마을에서 깊숙하게 들어온 골이 깊은 골짜기도 아니건만 고봉준령과 울창한 수목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한순간에 첩첩산중에 가쳐버린 기분이다. 비탈진 산길의 입구에는 벽방산 등산로와 가섭암 그리고 의상암을 알리는 푯말이 섰기에 먼저 큰절인 안정사부터 들릴까하고 계곡을 따라 숲속 길로 접어들자 불쑥 일주문이 다가선다. 기둥이 하도 굵어서 등산객을 붙들고 손을 맞잡고 안아보자 했더니 냉큼 주춧돌에 올라서주건만 한사람이 더 있어야 닿을 크기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문수보살” “지장보살” “대방광불화엄경” 소리를 내서 읽으면 속절없는 염불인데, 주홍글씨로 음각된 커다란 자연석의 빗돌 여섯이 드나드는 중생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우뚝하게 선 언덕배기에는, 수령 수 백 년은 족히 될 노송과 느티나무와 도토리나무가 우람한 몸집으로 빼곡하게 섰다.

바윗돌 그대로에 면을 갈고 홈을 파서 흉년을 살아 왔던 크고 작은 맷돌이 이제는 역사의 퇴물이 되어 나무그늘을 지키고 앉았는데, 작은 계곡을 가로지른 해탈교를 건너면, 높다란 축대를 오르는 층층 돌계단 옆으로 빛바랜 단청이 세월의 깊이를 일러주는 고색창연한 누각이 만세루이다. 마주하여 높다랗게 2층으로 된 육모정 범종누각으로 아래층은 근작인 대종이 가까스로 매달렸고 위층에선 대북인 법고가 가득히 자리를 잡았는데 운판 옆으로 커다란 목어가 뱃속을 비우고 매달렸다.

돌계단을 오르자 마주하는 안정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꽤나 널따란 마당을 깔아놓고 드높은 석축의 축대위로 천년고찰 안정사의 대웅전이 웅장하게 높이 앉았다. 용마루는 허리가 잘록하게 어깨를 길게 늘어뜨렸고, 좌우의 추녀는 양 날개를 활짝 펴고 연방이라도 ‘휘-익 ’ 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학을 연상케 한다. 희끗희끗하게 빛이 바랜 단청에서 천년세월의 향기가 온고지정으로 우러나는데 육중하지도 않으면서 웅장하고 장엄한 듯 빼어나서 날아갈듯 날렵하다.

나한전과 명부전을 비롯한 여러 당우를 좌우로 거느린 대웅전을 들어서니 삼존불은 생각보다 자그마한데 천정의 구조가 놀랍게도 화려하다. 여느 절집이나 본존불 위의 닫집이 화려하고 찬란한데 어찌된 사연인지 닫집은 검소하게 간결하고, 천정 전체는 겹겹의 익공에다 층층으로 공포를 쌓아, 돌출된 끄트머리마다 연꽃봉오리가 연방이라도 필 듯이 봉곳봉곳 솟아있고, 각양각색으로 들쭉날쭉 걸쳐지고 빼곡하게 포개져도 질서정연하게 꿰맞춰져 있으니 신의 조화인가 도승의 법력인가! 선조들의 건축술에 그저 놀랄 뿐이다.

헌향삼배로 예를 갖추니 삐걱거리는 마루청에 눈길이 간다. 얼핏 보아도 큰자귀로 쪼아 낸 여러 자국이 옴팍옴팍하게 뚜렷하여 투박스럽기는 그지없으나, 모도 닳고 결도 닳아 미끄러질 듯이 반들거리고 있어 무릎을 꿇은 채로 눈을 감았다. 우리들의 할머니들이 애가 타서 향을 사르기를 천년이 넘었으니 절박한 소원인들 오죽이나 했으며 간절한 기도인들 그칠 날이 있었겠나, 백팔배로 닦아내고 삼천배로 마름질되어 이토록 달았던가. 행자승도 사미승도 속세와 절연하고 삭발한 채 장삼입고, 야심토록 절을 해도 모질고도 질긴 인연 끈질기게 달라붙어, 목탁치고 염송하며 가사장삼 적시면서 눈물로서 닦았던가! “부디 중생들이 소원을 이루게 하소서 나무본사아미타불!”

보물로 지정된 괘불탱화는 큰 행사 때나 볼 수 있다하고, 동종은 2층 종각에 놓였으나 나무계단이 삭아 떨어져서 먼발치서만 보고 의상암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시멘트로 포장되고 경사가 완만한 산길로 접어들자 크고 작은 소나무가 하늘을 뒤덮었다. 한 아름도 넘는 굵은 소나무는 여유롭게 굽어가며 또렷또렷한 거북등 껍질로 아랫도리를 감싸고, 위로는 붉은 빛이 진한 황토색인 황금송이 즐비하다. 위풍도 기품도 근엄하고 당당하여 만고상청 고고한 자태가 멋스러워 탐이 난다. 다리도 쉴 겸 몇 굽이를 돌았을까 하고 뒤를 돌아 안정사 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사방이 온통 소나무 숲으로 진녹색의 물결이 출렁거리는데 상수리와 느티나무도 덩달아서 일렁인다. 조선조 21대 영조께서 절경을 이루는 안정사의 소나무를 보호하라며 어송패와 금송패를 내려서까지 어명으로 지켜 왔다니 25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베푸신 자애에 따사롭기 그지없다. 바람이 불면 더 없는 풍광이라 겨울날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가 마치 춤을 추는 듯 하다하여 ‘한산무송’이라 이름 짓고 벽방산 8경으로 이름을 날린다.

굽이굽이 열두 굽이를 돌아 가섭암에 닿았다. 작은 절집이 ‘ㄷ’자로 반듯한 기와지붕인데 법당과 승방을 구분하지 않고 통방으로 되어있다. 너와 나의 가름이 없다는 부처의 뜻이 아닐는지….

가섭암은 654년 원효대사가 창건을 하면서 석가의 상수제인 가섭존자의 명호를 따서 이름 하였고, 가섭존자가 석가보다 나이가 많은 것과 같은 뜻으로 큰절인 안정사 보다 먼저 세웠단다. 절집 옆으로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엔 범종모양을 한 정교한 돌탑은 원효가 거들고 의상이 도운 걸까, 천개일까 만개일까 억 만개일까, 크기도 엄청난데 세월의 깊이조차 가늠키가 어렵다.

한참을 오르자 곧장 올라가면 의상암이고 왼편으로 돌아가면 은봉암이라는 표지판이 있는데 1.3km를 들어가야 한다하여 후일로 기약하고 곧장 의상암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몇 굽이를 돌고 돌았을까 굽이진 곳은 힘들어도 돌고 나면 평지 같다. 우리들의 삶도 이 길 같아서 굽이마다 힘들어도 돌고나면 한 숨을 돌리지 않았던가. “휴-” 하고 긴 숨을 토하며 하늘을 쳐다보니 사방이 숲으로 가려졌는데 여기만은 하늘이 동그랗게 뚫려있다. 의상이 이 천공으로 바리 공양을 받으며 창건했다는 작은 절집 의상암은, 세월의 무게가 버거워서 일까 낡고도 헐은 채로 첩첩산중 깊은 골에 없는 듯이 앉아서, 탐욕도 벗어놓고 애증도 벗어 놓고 사바세계를 향해 오르지 중생발원만을 기원하는 향불은 오늘도 실낱같이 타오르고 있다.

/시민기자

안정사
안정사
가섭암2
가섭암
의상암3
의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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