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제비 소년 진혁이
꽃제비 소년 진혁이
  • 경남일보
  • 승인 201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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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대 교수)
올해 추석은 다른 해에 비해 긴 휴가기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어 참 좋았다. 무더웠던 여름나기에 힘겨웠어도 태풍마저 비껴간 추석기간은 모처럼 가족들이 웃음꽃을 피우며 즐길 수 있었던 풍요로운 명절이었다. 여유로웠던 만큼 추석명절 기간에 풍성한 TV의 특집프로그램들은 우리를 즐겁게 해 준다. 특집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는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특히 탈북 소년 진혁이가 직접 출현한 ‘재회’는 진한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한 감동 저변에 뭔가 모를 개운치 않은 생각이 맴돌아 나가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가슴 저린 여운이 남은 다큐멘터리

진혁이가 출현한 다큐멘터리가 진한 감동을 준 것은 이미 연초에 방영되어 반향을 일으켰던 ‘특별취재 탈북’의 후속탄이었기에 그때 감동을 이어주기에 충분했다. ‘특별취재 탈북’은 압록강을 출발해 중국, 동남아시아를 잇는 대장정의 탈북기를 2부작으로 밀착 취재한 것이다. 이 다큐는 1월 방영 당시에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기도 했다.

추석 특집 ‘재회’는 이 다큐의 뒷이야기를 이어가는 프로그램이다. 이 후속 다큐는 목숨을 건 탈북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던 당시 7살 꽃제비 소년 진혁이가 주인공이다. 그 방송은 이미 뉴스시간을 빌려 ‘한국 정착 9개월 된 김신혁 군 성장기’라는 제목으로 예고편을 내보낸 터이다. 앞의 다큐가 목숨 걸고 자유를 찾아 나선 한 어린 생명의 고귀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고 아직까지 가슴 한 켠에 뭔지 모를 저린 여운이 남아 있던 터라 쉽게 화면에 빠져 들었다.

스튜디오에 출현한 진혁이는 먹을 것을 찾아 혜산장터를 전전하던 당시의 진혁이가 아니었다. 진혁이는 꼬질꼬질하게 때가 낀 점퍼차림에 장마당 한구석에 쪼그리고 있던 더러운 아이도 아니었다. 남은 음식을 주워 먹다 얻어맞아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헤진 생채기가 난 불쌍하기만 한 아이도 아니었다. ‘재회’에서 만난 진혁이는 얼굴에 부기도 빠지고 키도 훌쩍 자란 장난기가 가득한 소년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느 어린아이들과 다름없이 천진한 진혁이는 좀 어색해 하면서도 학교에서 배운 동요도 곧잘 부르고, 태권도 실력도 뽐냈다. 다큐 ‘재회’는 탈북 이후에도 진혁이가 잘 자라 적응해 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시청자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에 족했다.

하지만 다큐는 끊임없는 궁금증을 해소시키고자 해서 그런지 기획 의도가 너무 나갔다. 아이의 진솔한 생각을 들으려는 의도는 ‘거기까지만…’ 했어야 하나 멈추지 못하는 관성 때문인지 너무 나가 진행자나 진혁이 모두 어색하기까지 했다. 시청자들의 시선으로 볼 때 진행자가 “네가 이곳에 와서 행복하지 않니?” 하고 강요하니 그렇다고 억지로 대답하는 듯이 보였다. 북한에서의 꽃제비 시절을 질문할 때는 입을 닫았다. 같은 출연자가 ‘여기 와서 북한에서 살았던 기억하기 싫은 꿈만 꾼다’는 증언은 탈북자들에게 말하기 싫은 억눌러 감추고 싶은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한다. 어린 진혁이에게 기억하기 싫은 것들을 떠올려 시청자들의 호기심 어린 궁금증만 채우는 일은 아이를 너무나 가혹하게 하지 않는가.

‘재회’가 가슴 아픈 이유

앞의 탈북기 다큐는 탈북의 험난한 과정과 비참한 북한의 실상을 잘 알 수 있게 하는 수작이었다. 그 어린 것이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숨죽여 가면서 생존 본능에만 의지해 목숨 걸고 자유를 찾아온 과정은 모두에게 공감을 준다. 어쩌면 인간의 삶의 고귀함과 생명에 대한 존중과 외경까지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탈북 다큐멘터리에서 진혁이로 나갔지만 진짜 이름은 ‘김신혁’이라고 신상을 털기 시작한 ‘재회’에서 시작해 연말에는 신혁이의 성장기를 담은 후속 다큐멘터리를 계속 방영한다고 해 걱정이 크다. 우리들에게 ‘신혁’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알아야 할 권리 이상으로 ‘신혁’이의 올바른 성장을 지켜줘야 할 의무도 함께 있어서 그렇다. 그는 스스로 삶을 선택할 의지가 없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다큐에서 “너 말 안 들으면 북한에 되돌려 보낸다”는 같은 반 어린이의 말을 여과 없이 내보낸 것도 다큐 감상 후 마음 쓰린 대목이었다.

고원규 (객원논설위원 한국국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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