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보기, 행복하기
다르게 보기, 행복하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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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 (아동복지전문기관 홍보담당)
진천에 사는 ‘한춘자 할머니’가 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분이다. 할머니는 정혜윤PD의 여행을 주제로 한 인터뷰 책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 등장하는 인터뷰 중 한 분이었다. 할머니는 군대 간 남편의 편지에 답장을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 80세 때 한글을 배웠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후 할머니의 세상은 달라졌다. 그저 지나쳤던 길가에 핀 들국화 냄새도 맡아보고, 지천에 널린 돌도 들춰보게 되었단다. 팔십 평생 보아온 세상이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는 이 할머니가 ‘원래 특별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비범하게 감수성이 풍부했던 할머니가 글을 알게 되어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찾으신 것이라고.

요즘 우리 할머니께서 문자메시지를 부쩍 자주 보내신다. 작동이 서툴렀던 처음엔 내용이 입력되지 않아 ‘연락 바랍니다’란 메시지만 왔다. 한데 ‘강민지할머니다자나할머니잘하재’란 메시지를 성공하신 이후론 실력이 일취월장하셨다. 내가 잊고 있던 증조할아버지 제사, 새로 산 핸드폰 자랑 같은 것들을 전해 오신다.

연휴에 집에 가니 할머니께서 핸드폰 카메라 기능도 익혔다며 찍어두신 사진들을 보여주신다. 우리집 베란다의 꽃들이다. 줄지어 늘어선 화분, 만개한 꽃송이, 특이한 무늬의 이파리 등 참 예뻤다. 사진을 잘 찍어서도, 원래 너무 예쁜 꽃이어서도 아니다.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춘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예쁘다고 생각지도 못하고 넘겼을 것들.

우리 할머니도 한춘자 할머니처럼 비범하게 감수성이 풍부하신 걸까. 아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들을 다르게 보는 눈이 시를 쓰며, 핸드폰 사용법을 익히며 두 할머니께도 생긴 것이다. 그리고 두 분의 하루하루는 조금 더 행복해지셨으리라.

할머니보다 훨씬 스마트한 나의 핸드폰에는 무엇이 담겨 있던가. 출장지에서 회의 중에 작성한 메모, 장 볼 목록 따위의 것들로 스마트한 삶을 살고 있다 믿었다. 원래 글을 알고 핸드폰을 능숙하게 다뤘던 나는 모든 것을 그저 스쳐보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매일 비슷한 하늘을 담겠다고 카메라를 드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고, 일상에서 만나는 풍경에 감탄할 줄 몰랐으며, 그것들로 인해 행복하다 느끼지 못했다.

나를 스치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다르게 보려’ 노력하지 않은 채 글 쓰는 것이 나의 재능이라고 믿었다. 비문은 없는지, 사실관계는 정확한지, 후원을 이끌어낼 임팩트 있는 문장이 있는지, 그것들이 중요하다 여겼다. 내일부터 시작하리라. 평범하다 생각했던 옆자리 동료의 얼굴에서 예쁜 구석을 찾아 칭찬해야지. 잠만 자지 않고 출근길 지나는 버스 밖 풍경들을 보아야지. 성큼 다가온 가을의 냄새가 여름의 그것과 똑같지 않다는 것을 느껴봐야지. 그렇게 조금 더 행복해져야지.

강민지 (아동복지전문기관 홍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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