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사색을 위한 조건
고독은 사색을 위한 조건
  • 경남일보
  • 승인 201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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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사색에는 조용한 장소가 필요하듯, 우리는 사색을 하기 위해 주의 접촉에서 격리(隔離)되어 조용한 장소를 구하기도 한다. 더구나 자기 성찰에는 그러한 환경이 요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는다. 고독은 사색을 위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를 응시하고 조용히 인생을 명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고독의 시간은 어떤 의미에서 구원의 시간일 수도 있다. 고독 속에서 마음껏 꿈을 꿀 수 있고, 감상에 젖을 수 있고, 상상의 날개를 타고 낭만의 세계를 달릴 수 있는, 즉 내가 나하고 대화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진리를 향해서, 미(美)를 찾아서, 이상(理想)의 세계를 동경하여 한없이 위로 높이 날개를 펴며 날아갈 수 있다. 그러나 기실은 꿈은 어디까지나 꿈이요, 결코 현실은 아니다. 이념에 대한 꿈과 이상에 대한 도취는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꿈속에서 마냥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꿈은 깨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위대한 인물들은 고독을 사랑하고 고독을 예찬하기도 했다. 고독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지한 사색을 위한 정신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는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지만 사람의 인품은 타인과의 접촉에서 연마되고 원만해 지는 것이다. 모가진 돌멩이들이 서로 부딪쳐서 둥글한 자갈이 되듯이 규각(圭角)을 가진 인간은 상호 접촉하는 가운데서 원만한 성격도 인격도 형성된다. 다만 사색에는 고독의 분위기가 필요하며, 따라서 영감(靈感)을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고독에서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남과 교통하는 사회적 실존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고독 속에서 벗어나 현실의 생활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사색을 위해서 가끔 고독의 세계를 갖는 것은 좋으나 우리는 고독 속에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나와 너와의 생명적 공감의 따뜻한 인간적 대화 속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고독은 정신의 산책처(散策處)지 영원한 안식처는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고독이 저마다의 안식처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사색과 자기 성찰을 위해서 고독한 환경을 가끔 택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왜냐하면 고독 속에 혼자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거인이요, 정신력이 비상하게 강한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독은 내가 나의 내적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눈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 속에 있으면 문명이 그립고 문명 속에 있으면 자연이 그립듯이 혼자 있으면 사람이 그립고 사람 속에 있으면 고독이 그립다. 우리는 홀로 있을 때 고독할 뿐 아니라 알지 못하는 군중 속에 섞일 때 더 한층 고독을 느낀다. 서로 따뜻한 대화를 잃어버릴 때 인간은 고독한 것이다. 낯선 군중들 속에서 이방인(異邦人)처럼 느낄 때 우리는 고독의 비애를 느낀다. 홀로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속에서 대화할 벗이 없기 때문에 고독하다. 고독 속의 고독보다 많은 사람들 속의 고독이 더욱 외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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