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이장의 고구마
젊은 이장의 고구마
  • 경남일보
  • 승인 2013.10.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고향마을 달동댁(宅) 장손자인 이(李)씨가 귀농한 건 3년 전쯤이다. 마흔 어름의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 옛집터에 새로 집을 짓고 이장까지 맡게 되자 어머니는 아들의 귀향만큼이나 좋아했다. 젊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좋은 사람’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 동네가 예전만 못했는데 ‘좋은 사람’중의 하나가 돌아와 이장까지 맡았으니 동네의 전체적인 격이랄까, 수질 같은 게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엄청난(?) 기대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모를 따라 도시로 갔던 젊은 이장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어른 아이 구분 할 줄도 알고,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고 했다. 그의 조부모나 부모의 평판이 그랬던 것처럼 역시 인간됨이 다르다는 게 어머니의 종합평가였다.

“이장이 동네 뒷밭에 고구마를 많이 심었더라.” 추석에 역귀성을 한 어머니는 동네 이장이 고구마 심은 이야기부터 꺼냈다. 얼마나 많이 심었기에 어머니의 관심사가 된 것일까. “동네 계환이네 집 뒤에 있는 너른 밭에 다 심었더라. 500평도 훨씬 넘지 않을까 싶다.”

30여년 전 이장이 고향을 떠났던 바로 그 무렵 동네에서 사라졌던 고구마 밭이다. “그렇게 많이 심었으면 팔려고 하는건데 제값 받을 방법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30년 만에 보는 검푸른 고구마 밭을 어머니가 반가우면서도 걱정스럽게 만나는 이유였다.

고구마가 겨울 간식거리자 식량이었을 때 고구마는 중요한 밭 작물이었다. 고구마를 얇게 잘라 초가지붕 위와 앞마당에 하얗게 널었던 ‘빼때기’도 늦가을 농촌의 익숙했던 풍경이었다. 콩밭보다 더 짙푸르게 여름밭을 채색했던 고구마는 어느날 약속이나 한 듯 갑자기 농촌에서 사라졌었다.

형편이 좋아지자 고구마를 식량으로 쓰는 사람이 줄고 가격이 폭락했다. 그런 고구마 밭을 초짜 농부인 이장이 500평도 넘게 펼쳐 놓았으니 아흔을 앞둔 프로농부는 젊은 농부의 계산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한 것이다.

뒷산에서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는 동네는 겨울 북풍이 강하고 토질이 좋지 않다. 그래선지 벼농사 외엔 특용작물이 없는 곳이다. 이장 역시 귀농 이후 벼농사가 주종이다. 그러니 고구마를 공동으로 출하할 시스템이 있을 리 없고 제값을 받기도 난망이다.

엊그제 마트에서 본 고구마의 가격표는 100g에 460원이나 됐다. 80㎏ 한가마니로 치면 30만원이 넘으니까 엄청난 소비자 가격이다. 중간마진이 아무리 높다 해도 이 정도면 산지 출하가격도 10만원쯤은 될 법하고 그리치면 괜찮은 농사다. 그러나 모두들 안다. 이 가격은 토질 좋은 곳에서 나는 1등품 고구마에다 본격적인 출하철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다.

가족농(家族農)의 부활이 대량 실업시대를 해소할 지구촌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전 지구적으로 젊은 이장의 고구마 농사가 성공하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