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아래서
불꽃 아래서
  • 경남일보
  • 승인 2013.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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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희지 (소설가)
“와아!”

지난 개천절 날의 촉석루. 펑, 소리와 함께 모여든 인파들 속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깜깜한 밤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조그만 불씨 하나가 뿜어내는 수 갈래의 불꽃은 혹은 점으로, 혹은 선으로 타오르다 스러졌다. 명멸 후의 허무감을 느낄 틈도 없이 불꽃은 또 치솟아 올랐고 빛은 더욱 현란해 졌다. 신비하기 그지없는 광경을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치켜든 사람들, 연인의 어깨를 껴안은 채 밤하늘을 가리키는 청춘들 사이에 홀로 서 있던 나는 문득 목소리 하나를 떠올렸다.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선생님?”

나를 인생의 멘토라 여긴다는 한 학생이 지친 모습으로 찾아와 물은 말이었다. 그 말 속에는 전교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자조의 말이 무겁게 깔려 있었다. 뭐라고 말해 주어야 하나. 너의 안정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를 절제하고 억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주어야 하나.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해야 하나. 그 학생은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어 물었다.

“선생님, 전 왜 조르바를 부러워하면서도 조르바처럼 살지 못할까요?”

아, 조르바! 그 학생의 입에서 조르바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마구 떨렸다. 한 때 내 삶의 우상이었던 조르바. 그는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신이 만든 율법보다 자신의 감정에 철저히 충실했던 인물이었던 조르바는 악기를 연주하고 항아리를 빗는데 걸리적거린다며 손가락을 자른 괴짜이기도 하다. 그런 그는 규격화하지 않는 자유의 자유로움이 어떤 건지 내게 가르쳐 준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나도 니가 조르바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어른이었으므로.

“힘들어도 어쩌겠니. 견뎌내야지. 조르바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

옹색하기 짝이 없는 내 조언을 들은 그 학생은 조금 쓸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돌아섰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다간다. 윤회설을 대입하더라도 그다지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윤회관을 가졌으므로 전생과 이승 내생이 연결되어 있고는 생각 하지만 이승이 곧 전생이나 내생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한 번 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미래의 안정된 삶을 위해 현재를 철저히 절제해야 하는 걸까? 깜깜한 허공으로 치솟은 속도의 끝에서 피어나는 휘황찬란한 저 불꽃처럼 순간순간을 태워도 좋을까. 명멸하는 불꽃 아래서 나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답을 얻기 위해 눈이 짓무르도록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최미희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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