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예술제의 성공을 예감하면서
개천예술제의 성공을 예감하면서
  • 경남일보
  • 승인 2013.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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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개천예술제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올해로 63번째이니 역사와 전통이 자랑스럽다. 돌이켜 보면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 시인 설창수씨를 비롯한 진주의 문화예술인들은 경남일보와 문총진주지부를 구심점으로 의기투합, 제1회 영남예술제를 열었다. 일제의 강압 속에 널리 펴지 못했던 문화예술의 혼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서였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행사를 개최하지 못했지만 면면히 이어져 와 오늘날의 찬란한 업적을 쌓아 오고 있다. 1964년부터 5년 간은 국가 원수가 참석하는 국내 최대의 종합예술제로 자리 잡았고 이후 개천예술제로 개명해 그 격을 높였다. 1981년부터는 재단을 만들어 재정적 문제를 해결해 더욱 탄탄한 기반을 갖췄다. 이후 유등축제가 가세, 규모가 확대돼 당초 내세웠던 순수예술의 대중화라는 목표를 크게 외연시키는 전기를 마련했다.

민속예술의 창조와 정립이라는 기치도 회를 거듭할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도 예술제가 쌓아온 업적이다. 63개 성상을 지나오는 동안 개천예술제는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의 등용문이 됐고 지금은 그들이 전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10개 분야 64개 행사가 마련돼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인구 불과 34만 남짓한 지방의 소도시에서 이런 권위 있고 전통 있는 행사를 해마다 개최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일요일 오후 우산을 들고 예술제에 빠져들기 위해 혼자 길을 나섰다. 예술제는 칠암동 문화예술회관 앞에서부터 감상하는게 제격이다. 그곳에는 각종 전시와 경연, 공연이 한데 어울려 있다. 출발부터 회상에 잠긴다. 그곳은 동심이 서려 있는 곳이었다. 그 시절에는 온통 대밭이었고 백사장이었다. 예술제 기간 중 이곳 백사장에선 소싸움이 벌어졌고 강 언덕 밑에는 가마솥을 건 국밥집으로 성시를 이루었다. 그 한켠에는 동춘서커스가 요란한 나팔소리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그 길에 지금은 예술회관과 야외공연장이 들어서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남강 둔치에 들어서니 풍물시장의 임시텐트가 즐비해 사람들을 부르고 인파도 점점 늘어난다. 옛날 이곳은 아낙들의 빨래터였다. 드럼통을 반으로 자른 솥에서 빨래를 삶아주던 풍경이 아련하다. 대숲으로 절경을 이루던 촉석루 맞은편에는 소망등이 열병하듯 질서 있게 걸렸고 지난밤 화려한 불빛으로 환상을 자아냈던 유등이 유유히 강 위를 장식하고 있다. 부교를 건너 촉석루 쪽으로 향했다. 촉석루 밑도 예전에는 빨래터였다. 중학생 시절 직접 만든 유등을 이곳에서 띄워 보낸 기억이 새롭다. 초창기 예술제는 이곳 촉석루와 촉석공원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각종 경연과 백일장이 열렸고 공원의 무대에선 공연이 펼쳐졌다. 지금은 성지정화사업으로 계단을 올라가야 했던 옛 정취는 사라지고 촉석루만 긴 세월을 지키고 있다.

성지에 들어서니 이곳에도 예술제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성곽 주변에는 임진년 진주대첩때 사용했던 대포가 진열돼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는다. 문득 올해가 계사년 진주성 2차전투 7주갑이 되는 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예술제 본부가 올해 예술제에 진주대첩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각종 행사를 준비한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1차전투의 승전이 채 가시기도 전 진주성은 왜구의 2차 침공으로 7만 민·관·군이 무참하게 도륙됐고 진주성은 마침내 함락됐다. 그 중심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춘다. 아! 우리는 축제의 환희 속에 그때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빛, 남강 위의 휘황찬란한 유등, 사람의 물결로 출렁이는 거리, 그 어디에도 420년 전 계사년을 추모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올 개천예술제도 성공적 결실을 예감한다. 순수예술의 대중화와 민속예술의 창조와 정립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그렇다. 유등축제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아 축제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시킨 면에서도 큰 성과를 거뒀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잊어선 안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성과 정체성이다. 전통은 역사의 나이테이다. 이제 개천예술제는 100년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난 역사와 전통을 뒤돌아보고 새로운 가치를 정립해 나갈 시점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를 잊지 않는 자세가 아닐까. 적어도 개천예술제는 축제를 뛰어넘는 또 다른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향후 100년을 향해 가는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요일 낮 한때 예술제를 일견하면서 갖는 가벼운 단상만은 아니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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