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먹은 도토리
벌레먹은 도토리
  • 경남일보
  • 승인 2013.10.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지난 일요일 아침, 마루에서 말리던 도토리를 버렸다. 보름 전쯤 등산 길에서 주웠던 것들이다. 100개쯤 될까. 얼마나 말랐나 봤더니 몇 개를 빼고는 모두 썩었다. 절반쯤은 알맹이가 푸석거리거나 퇴비처럼 변했고 나머지는 알맹이 자리에 굼벵이가 살아서 꿈틀거린다. 예전보다 농산물이나 과일의 보관이 어려워지고 벌레가 많아졌다는 건 새삼스럽지가 않다 .하지만 깊은 산 도토리까지 이런 줄은 처음 알았다.

예전 고향 집 뒤꼍 밤나무에서 나왔던 알밤은 마루 밑에 묻어만 두어도 다음해 여름 제사상에까지 올릴 수 있었다. 이제는 같은 장소에서 나온 것도 바로 냉장고에 넣어 두어야만 얼마라도 보관이 가능하다.

제 혼자서 밤과 감이 가득 열렸던 집 주변의 과일도 이젠 약을 치지 않으면 구경하기 어렵게 된 지 오래됐다. 언젠가 알만한 사람에게 왜 이렇게 밤이나 감에도 병충해가 많은지 물었던 적이 있었다. 대체로 “많은 나무들을 밀식재배하고 영양을 많이 공급하기 때문에 병충해가 많다”고 풀이했다. 사람도 많이 먹고 도시에 몰려 살면 전염병이나 다른 질병이 많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 했다.

누군가는 “산성비의 영향으로 산과 들의 땅이 모두 산성화돼 알을 낳을 곳을 못찾은 곤충들이 열매에 알을 낳는 탓”이라고 풀이했다. 또 어떤 전문가는 “나무로 불을 지펴 밥을 짓는 과정에서 나온 연기들이 나무에 소독작용을 했기 때문에 병충해가 없었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었다. 그러나 예전엔 산에 자생하는 과일나무들도 병충해가 없었으니까 ‘훈증효과’는 좀 과장된 듯하다.

논과 밭, 골프장, 과수원이 모두 농약 범벅이다. 나머지 산과 들에도 산성비가 내리는 게 사실이고 보면 알을 낳을 곳이 없어진 곤충들이 열매에 알을 낳는다는 가설이 일리 있어 보인다.

밤이나 감에 병충해가 생기는 건 인간과 자연의 접합부분인 농사영역의 문제다. 그러나 심산유곡의 도토리에도 문제가 생겼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믿고 있는 생태계의 자가치유 기능이 고장난 것이고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때문에 썩는 도토리는 지구 온난화만큼이나 근원적인 지구 오염문제를 상징하는 것 같다.

도토리를 말릴 수 없다면 도토리묵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중국의 도토리는 썩지 않는가. 도토리묵이야 썩기 전에 급속건조를 시켜 가루상태로 보관을 하면 될 것이다. 냉장고와 건조기가 없는 다람쥐와 멧돼지들은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생태계가 유지되려면 그들은 도토리가 없어진 세상에서 살도록 진화해야 한다.

기적의 사과를 만들었던 일본인 이시카와 다쿠리는 과수원도 자연농법으로 하면 과일에 병충해가 생기지 않고 썩지도 않는다고 해서 인기를 끌었다. 지력이 강해지면 병충해가 없어진다는 유기농의 논리와 같다. 도토리는 최상의 자연상태에서 제 마음대로 크는 데도 왜 이럴까.

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