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잡고 미더덕 따고 바다 품에 산다
물고기 잡고 미더덕 따고 바다 품에 산다
  • 임명진
  • 승인 2013.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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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마을에 가다] 고성 우두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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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포마을 전경
 
 
 
마을 앞바다를 보물창고라 여기고 살아가는 바닷사람들. 바다를 통해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장가도 보냈으니 바다는 이들에게 보물창고 이상이다.

고성군 동해면 우두포마을 주민들은 그래서 바다를 금지옥엽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청명한 가을하늘이 마치 우두포마을 앞바다와 닮았다. 화창한 날씨 속에 멀리서 한눈에 보아도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은 아늑함 그 자체였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천진국(51)씨는 “바다에서 나고 자라 여기까지 왔으니 바다는 늘 고마운 존재”라고 했다.

△일제 때도 이름 떨친 어촌마을

우두포 마을은 천씨처럼 바다에 대한 경외와 고마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56가구 180여명의 부지런한 어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반농반어의 형태를 띠는 다른 어촌과는 달리 어업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부로서의 자부심이 더 크다.

마을의 지세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소 우, 머리 두, 개 포자를 써 ‘우두포’라 불린다.

‘어촌 우두포’의 명성은 일제 강점기 시절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우두포마을은 멸치잡이 전진기지로 명성을 떨쳤다. 일경(일본경찰)의 주재소가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고, 광복 이후에도 집집마다 배 한 척씩은 보유할 정도로 알아주는 부촌이었다.

전 어촌계장을 지낸 마을주민 조온재(69)씨는 “마을 앞바다는 일제시대부터 멸치잡이가 성행해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마을 규모가 상당했다. 지금도 근방의 다른 마을에 비해 많은 30여척에 가까운 어선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 정박해 있는 배는 2t 이상의 큰 배가 많다. 어업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먼 바다에까지 나가 조업을 하기 때문에 큰 배가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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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당시에 일인이 거주했던 가옥. 3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아온 천광제(82)씨가 집을 소개하고 있다.



△우두포 미더덕 알아주는 별미

주민들의 생업은 크게 고기잡이와 양식어업으로 나뉜다.

전통의 멸치잡이는 사양의 길로 들어섰지만 일년 사계절, 철 따라 도다리와 장어, 전어, 대구, 물메기 등의 고기잡이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미더덕과 굴, 피조개 등의 양식어업도 유명하다.

대구는 겨울 한철 어종이지만 고성 내에서는 최고의 어획량을 자랑한다. 특히 이곳의 미더덕은 진동 미더덕 못지않은 특산물로 마을의 주요 소득원 중의 하나다. 우두포어촌계는 12ha의 바다에서 공동사업으로 미더덕 양식을 하고 있다.

마을에서도 미더덕 전문가로 통하는 주민 천홍기(51)씨는 “마을 앞바다인 진해만은 국내 미더덕 생산량의 절반 넘게 생산되는 주산지다. 우리도 미더덕을 생산하고 있지만 판로가 어려워 고충을 겪고 있다”고 했다.

우두포 미더덕은 마을 앞바다의 수심이 깊어 뻘이 적게 차는 데다 색깔은 약간 붉그스레하고 향이 진한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무분별한 낚시꾼들 동네 불청객

우두포마을은 어촌마을의 트렌드인 어촌체험마을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그런 이 마을에 최근 낚시꾼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낚시꾼들의 방문에 새벽 조업을 나서야 하는 주민들이 밤잠을 설치거나 좁은 골목길에 차가 지나다니면서 안전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되고 있다.

최춘호 어촌계장은 “즐겁게 놀고 가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마을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서 쓰레기는 치우고 조용히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 새벽시간에도 마을을 드나들면서 예민한 분들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라며 낚시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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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조업이 끝나면 이 정자는 주민들의 시원한 휴식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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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포마을의 유일의 우물. 상수도가 들어서기 전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한 우물이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주민참여형 사업으로 불황 극복

다른 어촌은 발 빠르게 관광지화에 나서 여름철이 되면 관광객을 상대로 민박도 치고, 특산물도 내다 팔면서 짭짤한 부소득을 올리기도 하는데 이 마을엔 그런 게 없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배 한 척당 20kg의 조업은 거뜬했지만 지금은 5kg로 확 줄었다. 배는 감축되고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서 고향을 떠나는 이들도 늘었다. 특히 80년대 일본 수출로 황금알을 낳던 피조개 양식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타격이 컸다.

최근엔 동해면 일대가 조선특구로 지정되면서 이로 인한 조선소, 조선기자재 공장건립으로 바다에서의 조업이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주산물인 미더덕 영어법인을 설립해 소득을 다양화하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어촌계 공동사업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학정(43) 마을청년회장은 “우리 마을에서 아기울음 소리가 들린 지도 거의 10여년이 넘은 것 같다. 그럼에도 다른 마을에 비해서는 젊은 세대가 많아 청년회 조직이 활성화돼 마을발전을 위해 합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화합으로 소득증대 노력”

최춘호 우두포어촌계장


최춘호(58) 어촌계장은 올해부터 마을 어촌계를 이끄는 중책을 맡게 됐다.

그는 “타 어촌과는 달리 순수하게 바다조업으로 생활하는 우리 어촌이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마을발전을 위한 새 활로를 모색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어촌과 마찬가지로 우두포마을도 어족자원 감소와 인근의 조선소 건립 등으로 바다조업이 타격을 받고 있지만 주민들의 적극적인 화합과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2004년에 설립한 우두포마을의 주산물인 마을 미더덕 영어조합은 판로확대의 어려움도 있지만 법인을 설립해 공동생산, 공동출하를 통해 마을 소득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두포마을은 매미 태풍이 내습했을 당시 여러 채의 가옥이 바닷물에 침수되고 인명사고까지 발생했다.

최 어촌계장은 “마을 앞 방파제가 있는데 매년 여름이면 태풍에 주민들이 불안해 한다. 주민안전을 위해 방파제를 확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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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본 우두포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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