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전성시대
아버지의 전성시대
  • 경남일보
  • 승인 2013.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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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환 (경남은행 남진주지점장)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를 통해 유명세를 탔던 최원균 옹이 별세했다는 부음이 며칠 전 어느 신문기사에 실렸다, 영화 ‘워낭소리’는 경북 봉화의 평범한 농부 최원균·이삼순 부부가 40년을 함께한 소 누렁이와의 잔잔한 일상을 담은 저예산 독립영화로 2008년 고작 6개의 개봉관에 상영을 시작해 관객 290만명을 동원한 한국 독립영화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무엇이 시골의 평범한 노부부와 소의 이야기에 세상의 눈과 귀를 모으게 했을까. 거대 상업영화가 우선 먹기에는 편하지만 먹고 난 이후 더부룩함과 불편함을 주는 패스트푸드라면, 이 영화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차려진 소소한 밥상과도 같은 그런 정서적 공감 때문이 아닐까.

이 짧은 기사가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아버지, 소와 함께한 나의 어린 시절을 오늘의 일상과도 같이 살아 움직이게 한다, 나의 유년은 아버지와 우직하면서 용모 수려한 암소와 함께한 농사일이 전부라 해도 무방하겠다.

누렁이가 언제부터 우리 집에 왔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내가 열살 전후 아지랑이 피는 봄 누렁이의 코뚜레를 잡고 앞서고 아버지는 뒤에서 쟁기를 잡아 산비탈 자갈밭을 힘차게 일구던 기억은 선명하다. 또한 그 해 이른 여름에는 똑같은 방법으로 모내기 준비를 했고, 가을에는 가을걷이와 보리파종을 함께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는 내가 굳이 앞에서 코뚜레를 잡지 않아도 누렁이 혼자서도 논밭의 이랑을 일구는 일에 익숙해 아버지와 소가 농사일을 하는 동안 사소한 허드렛일을 도우곤 했다, 이렇게 매년 반복되는 농사일이 참으로 달갑지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80년 중반부터 우리 집의 농사일도 누렁이를 대신해 경운기가 했다, 아버지와 누렁이가 고단한 농사일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는데 ‘워낭소리’를 보고 난 이후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운기를 비롯한 현대화된 농기계의 등장으로 아버지와 누렁이가 함께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부터 아버지와 소의 전성시대는 끝났으니 말이다, 봄가을 소와 함께 비탈진 밭과 천수답의 높은 이랑을 넘나들며 밭 이랑과 논 골을 힘차게 일구던 그때가 아버지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전성시대였음이 이 영화를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가끔씩 고향집에 들르면 연로해 출타를 자제하고 집안에만 계시면서 흔적만 남아 있는 외양간 앞 조그만 바위에앉아 햇볕을 쬐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뵈면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예전 비탈지고 옹색한 논밭에 비해 반듯하게 정리된 드넓은 오늘날의 들판이 풍요롭지 않고 황량하게 느껴지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논밭과 농사방법에서는 더 이상 아버지의 전성시대를 볼 수 없어서가 아닐는지.

차진환 (경남은행 남진주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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