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 경남일보
  • 승인 2013.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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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 (객원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장에서 김정일에게 저자세로 일관했다. “임기 마치고 난 다음에 위원장께 꼭 와서 뵙자는 소리는 못하겠습니다만,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게…, 특별한 대접은 안 받아도….”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했다는 말로서는 믿기 어려운 발언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NLL과 관련해 김정일이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과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NLL)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하자 노 전 대통령은 “아주 내가 핵심적으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문제를 위원장님께서 지금 승인해 주셨다”면서 호응했다.

김정일이 주장하는 군사경계선은 NLL보다 훨씬 남쪽으로 그어져 있어서 김정일 말대로 하면 ‘평화수역’은 NLL 남쪽에만 설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해 5도(북한과 인접한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는 남북 공동관리구역이 된다.

1979년 10월 26일 오전 11시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삽교천 준공행사에 참석하고 12시10분 KBS당진송신소 개소버튼을 누른 것이 생전의 마지막 행사였다. KBS는 종전의 500kw에서 1500kw로 방송출력을 올리면서 당진송신소를 개소했던 것이다. KBS당진송신소의 개소행사는 국가 1급 보안시설로 극비리에 치러져 방송보도 자체가 금지돼 국민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 한국은 월남전쟁이 끝나고 북한경제를 앞지르게 되면서 자유대한의 입지가 국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할 때였다. 따라서 북한을 비롯한 중국, 구 소련 등 공산권역에 사는 동포들에게 남북 간 체제에서 한국이 월등하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밝은 소식뿐 아니라 독재에 항거하는 모습까지 가감 없이 강화된 전파를 타고 공산권역에 흘러 들어갔다. 김일성 족벌체제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내용도 있었다. 공산주의도 비판했다. 반대로 자유대한이야말로 사람 사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이른바 심리전 방송이었다. 심리전은 상대방의 사기를 저하시킴으로써 자기편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중국공산당은 일찍이 중국에 사는 한국 교포들이 고국의 친인척에게 편지로 연락할 수 있도록 묵인하였다. 대공방송은 교포들의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간에는 60여년 동안 정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제경쟁에서 이미 승패가 가름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극한적으로 대치중이다.

DJ 정부가 들어서고 심리전 방송역량이 약화되면서 남한은 북한정권 편에 서서 정책을 수행했다. DJ는 국민 모르게 거액의 정상회담 대가를 지불해 무너져 가던 김정일 정권은 기사회생의 길을 찾았다. 심리전에서도 북한 측이 오히려 이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은 핵을 들고 남한을 협박하고 있다. 김정은은 요즘 3년 안에 남한을 무력통일하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북이 들고 일어나면 남쪽의 친북세력이 호응해 나선다는 계산에서 한 말일 것이다. 체제전복 음모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류의 남쪽조직을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대신 북한에 그와 비슷한 남측조직이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신라 제48대 경문왕은 왕위에 오른 후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알지 못했지만 오직 왕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평생 왕의 비밀을 지켰던 장인은 죽기 전에 아무도 없는 도림사 대나무 숲 속으로 들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라고 외쳤다. 그후로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왕이 이 소리를 싫어해 대나무를 베어내고 산수유를 심었는데, 이후부터 바람이 불면 “우리 임금님의 귀는 길다”라는 소리가 났다. 삼국유사에 있는 이야기다.

남북정상이 마주 앉은 자리는 기싸움의 자리다. 기에서 꺾이면 그 순간부터 주는 것만 있는 협상이 된다. 정상회담장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로서 대통령의 저자세를 몰랐을 리 없다. 그들은 그 모습을 죽음까지 안고 가고 싶었을 것이다. 정상회담 당사자였던 김정일도 노무현도 다 같이 역사적 인물이 됐다. NLL도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임금님의 당나귀 귀’를 대밭에서 외쳐서는 안 된다. 국민은 진실을 알아야 한다.

 

박동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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