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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거북도 만고풍상 부침을 앓는구나경남일보 선정 100대 명산 <73>속리산 천왕봉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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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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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산실루엣
 
 
 
 
속리산 법주사 맞은편 수정봉에는 목이 잘린 거북바위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잘렸던 목이 시멘트로 다시 이어져 있다.

목이 잘렸던 내력은 무엇일까. 임란 때 명의 장수 이여송이 거북이가 머리를 서쪽으로 두고 있어 명의 재물이나 재화가 동쪽 즉, 우리 땅에 들어온다고 하여 목을 잘라버린 것이다. 그런 뒤 거기에다 10층탑을 세웠다.

1653년(효종 4년) 이를 못 마땅히 여긴 옥천군수 이두양이 각성스님을 시켜 다시 머리를 찾아 잇게 했다. 그래서 지금은 시멘트로나마 이어져 있다. 그 후 충청병마절도사 민진익이 관찰사 임의백에 일러 10층탑을 헐어버렸다. 거북의 목은 상처가 돼 남아 있으되 당시 지식인들이 ‘친명사대’의 명분으로 불교를 억압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기록은 법주사 앞 삼거리에 ‘속리산사실기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666년(현종 7년)에 세운 것으로 우암 송시열이 짓고 절친이자 학동이었던 송준길이 새긴 합작품이다. 비는 이 외에도 ‘속리 명산’에 관한 내용과 세조가 이곳에 행차했음을 기록해 놓고 있다. 새삼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케 한다. 지금도 수정봉에는 만고풍상 영욕의 부침이 있었던 거북바위와 허물어진 탑이 남아 있다.

속리산 하면 으레 문장대를 떠올리는 이가 많다. 그런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문장대의 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군계일학, 문장대의 탁월한 생김새도 그렇고, 거기서 보는 기암괴석 속리산 8봉의 수려한 풍광도 그런 이유에 속한다. 여기에 조선 세조와 관련된 일화도 있다. 원래 이름은 ‘구름이 쌓인 봉우리’라는 뜻의 운장대였으나 세조가 바위봉에 올라 시문을 지은 이후 문장대로 바뀌었다고 한다. 세 번을 오르면 극락정토에 간다는 전설도 있다. 실제 문장대(1033m)는 그런 산이다. 그래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여행에도 이름을 올려놓기도 하다.

그러나 실상 속리산 최고봉은 문장대가 아니라 천왕봉(1058m)이다. 과거 천황봉으로 불리다가 4년전 천왕봉으로 바뀌었다. 전에 본보에서는 100대명산 속리산 경업대와 문장대구간을 취재해 게재한 적이 있고 백두대간을 종주할 당시에도 속리산 구간을 포함한 45Km를 산행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천왕봉코스로, 법주사에서 세심정, 천왕봉으로 올라 비로봉 입석대 신선대 경업대를 산행의 포인트로 삼았다. 덤으로 순조의 태실도 코스에 넣었다.

천왕봉은 우리나라 3대강의 물줄기가 분기한다. 주릉은 설악산을 닮았고, 멀리로는 우리 땅이 ‘산의 나라’임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산 마루금이 너울거린다.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과 괴산군, 경북 상주시 화북면에 걸쳐 있다. ‘세속과 이별한 산’이라는 의미다. 천왕봉, 비로봉(1032m), 문장대 등 8개의 수려한 암릉과 봉우리가 이어진다. 산 아래 법주사는 팔상전(국보 55), 쌍사자석등(국보 5), 석련지(국보 64), 사천왕석등(보물 15), 마애여래의상(보물 216) 등 국보를 간직하고 있다. 정이품송은 천연기념물 103호.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1984년 인근의 화양·선유구곡이 편입됐다. 한국 팔경, 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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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 이 봉우리 아래에 경업대 관음암이 있다.


▲등산로는 매표소→호서제일가람 일주문→법주사→목욕소→세심정→순조 태실(반환)→천왕봉→비로봉→신선대→경업대→관음암→세심정(회귀)→법주사→매표소. 총 16km에 휴식포함 7시간 20여분이 소요됐다.

▲10시 30분, ‘속세와의 이별’ 호서제일가람 일주문에 들어서면 넓은 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물길을 거슬러 진행하는 코스는 가족 나들이 길로 최적격이다. 법주사까지 가거나 더 연장해 세심정까지 약 4.6km가 가족 트레킹 코스다.

서두에 언급한 ‘속리산사실기비’는 법주사 앞 삼거리에 있고, 비에 나오는 거북바위는 계곡 건너 왼쪽 수정봉에 있다. 수정봉으로 가려면 레이크사이드호텔 ‘사내 4리교’ 부근에서 오를 수 있지만 입산금지이며 새해맞이 때나 개방된다.

오전 11시 25분, 출발 한시간만에 세심정. ‘문장대 3.3km, 신선대 2,7km ,천왕봉 3km’ 세갈래 코스 이정표가 나온다.

세심정에서 본격적으로 된비알 산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이 문장대, 오른쪽이 경업·신선대, 혹은 천왕봉으로 가는 코스다. 그러나 천왕봉으로 직접 가는 코스는 없고 상환암 석문방향을 거쳐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천왕봉 코스로 발길을 옮긴다. 세심정 주변 등산로에 ‘절구’가 몇 개 보인다. 13∼14세기 사용한 것으로 물길을 이용해 물레방아형태로 곡식을 빻았다 한다.

조금만 더 오르면 오른쪽 산등성이에 순조 태실이 있다. 문외한이 봐도 산세가 비범하다. 천왕봉에서 너울너울 아래로 이어지다가 이 봉우리에서 봉긋하게 솟은 뒤 꼬리를 내린, 지리적 명당이라고 한다.

취재팀은 태실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잠깐이지만 힘든 산행을 한 뒤 되돌아와야 했다.

이 길 어딘가 은밀한 산죽 밭에서 산돼지 보금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변 산죽을 예리한 이빨로 잘라 가로 세로 3m의 크기로 풀무더기를 쌓아 놓았다. 산돼지는 주로 4∼5월에 새끼를 낳는데, 최근에 새끼를 친 것으로 보인다. 또 가까운 곳에서 희귀한 들꿩수컷도 발견했다. 들꿩은 사람의 눈에 좀처럼 띄지 않는 종인데, 일전에 설악산에서 목격한 뒤 이번이 2번째다. 호랑이 얼룩무늬를 갖고 있으며 야성이 강해 얼굴도 섬칫하게 험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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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업대 풍경

오후 2시 44분, 우여곡절 끝에 출발 4시간(휴식포함)이 지나서야 천왕봉에 닿았다. 거칠 것 없이 사방이 트였다. 비로봉 입석대 문장대 방향만이 공룡의 등뼈인 양 구불구불 울퉁불퉁 찬란하고…,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멀고 먼, 산이 끝간데 없이 펼쳐진다. 이 풍광이 이번 산행의 최고 포인트이다. 이 봉우리를 중심으로 금강 한강 낙동강 삼수가 갈린다.

비로봉∼입석대구간은 바위와 숲의 잔치, 드림 로드 환상의 길처럼 여겨진다. 신선대에 약간 못미쳐 하산 길을 잡는다.

오후 4시, 출발 5시간 30분만에 경업대에 닿는다. 경업대는 주릉 갈림길에서 내려서 400m 아래에 있고, 다시 50여m 더 내려오면 관음암이다. 경업대는 커다란 단일 바위인데 조선 인조(1594∼1646)때 임경업 장군이 독보대사를 모시고 심신을 단련해 그의 이름을 따서 경업대라 불렀다고 한다. 여기서 주릉 오른쪽에 보이는 입석대는 장군이 7년 수도 끝에 세운 돌, 왼쪽 신선대는 백학이 날고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얘기꽃을 피운 곳이라고.

관음암 가는 길이 짜릿하다. 산행객은 관음암이 등로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허투루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일대는 돌의 축제, 석림이라 할만하다. 5층짜리 빌딩만한 바위 중앙이 쩍 갈라져 있고 그 틈사이로 S자형 길이 신기하게 뚫려 있다. 임 장군이 칼로 내리쳐 두부자르듯이 잘랐다는 ‘금강석문’이다. 바위틈에 들면 색다른 경험이 된다. 길은 이어진다. 빠져나가면 곧장 빌딩 같은 바위가 숲을 이룬다. 석간수인 장군샘을 지나고 다시 바위 사면을 따라 관음암으로 향한다. 일일이 손으로 깎고 다듬은 돌계단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길. 신기함과 아름다움은 감동으로 바뀐다. 오롯이 자리한 암자에는 1930년 보경화상이 그린 달마화가 있고, 석탑과 장군샘 해우소가 아기자기 위치하고 있다.

여기 임 장군의 과장된 전설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무인이자 애국자로서 절치부심한 장군이 경업대에서 도에 경지에 이르렀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그는 허망하게 세상을 떴다. 친명반청의 조선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청의 전쟁을 도와야했고 이미 쇠락해가는 명의 끄트머리를 부여잡아야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 이에 따른 괴리, 그는 이런 시대적 상황의 희생양이 됐다. 막장에는 김자점의 모함에 걸려 곤장을 두들겨 맞고 이슬이 됐다. 죽음 직전 세상에 내지른 한 서린 소리, “천하의 일이 아직 남았는데…,” 그의 억울함이 속리산에 메아리진다.

오후 4시 26분 금강골 휴게소를 지나 비로산장, 오후 4시 50분 세심정에 닿는다. 계곡에 있는 웅덩이 목욕소는 세조가 목욕해 피부병이 낳았단다. 법주사를 지나고 오후 5시 40분 늦은 시각, 날머리 매표소에 닿는다.

600년 된 소나무는 세조(1464년)가 법주사 행차 시 대왕이 탄 연이 이 소나무에 걸릴까 염려해 ‘연 걸린다’라고 소리치자 소나무가지가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일명 ‘연걸이 나무’라고도 한다. 세조는 신통방통한 이 소나무에 ‘정 2품’ 벼슬을 내렸다. 어느 위치서 봐도 갓모양이었으나 벼락을 맞아 가지가 부러져 형태가 훼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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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천왕봉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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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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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암 달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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