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하다는 것
홀가분하다는 것
  • 경남일보
  • 승인 201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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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희지 (소설가)
사람의 감정을 ‘쾌’와 ‘불쾌’로 양분해 보면 30대 70으로 불쾌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30퍼센트에 달하는 ‘쾌’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정은 ‘홀가분하다’라고 한다.

홀가분한 것은 어떤 상태인가. 사전에는 ‘근심이나 걱정이 해결되어 상쾌하고 가뿐하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무엇인가로 꽉 채웠거나 또는 채우려할 때보다 적당히 비웠을 때나 비우려 할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뜻일 것이다.

지난여름, 나는 뒤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를 잠시 보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으니 하는 일 중에서 두어 가지는 뒤로 미루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지인의 충고를 들은 후였다. 사실, 당시 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고 정신은 독서에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과부하 상태였다.

하지만 밥벌이, 대학원 공부, 작품 활동, 영어, 독서 등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일들 중에서 뒤로 미룰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어떤 것도 경중을 따지지 못할 정도로 내게는 소중한 일이었다. 그러나 너무 무리한 생활로 인해 허물어져가는 면역체계를 생각하면 지인의 조언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시간과 정력이 가장 많이 소진되는 대학원 공부부터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전공 특성상 끊임없는 취재여행을 하고 취록한 것들을 리포팅 해서 주일마다 제출해야 하는 일은 가히 초인적인 정신력과 체력을 요했기 때문이다.

“잘 했어. 그게 네가 사는 길이야.”

우선 대학원 수강을 보류했다는 말에 지인은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결정한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열패감에 빠져 속앓이를 해야 했다.

“이건 패배가 아니야. 네가 살기 위해서야. 살기 위해서 욕심을 조금 덜어낸 것뿐이라고.”

그랬다. 전 방위로 뻗쳐 있던 지적 욕구로 인해 내 체력은 임계치에서 간당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누군가 ‘하루 생활 중에서 가장 가벼울 때가 언제인가요?’ 라고 물어온다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시원하게 배설 했을 때요.”

이 말은 필요치 않은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끙끙거리던 내 지난날에 대한 원초적인 대답이다. 배설의 욕구가 원활하게 해결되었을 때처럼 홀가분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에 더불어 물질적 소유욕, 집착하는 감정, 과도한 지적욕구를 얼마간 내려놓았을 때도 우리는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수도 없는 ‘쾌’의 감정 중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홀가분’한 감정은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정신의 과도한 욕심을 비우고서야 맛볼 수 있는 축복인 셈이다.

이 가을에 우리, 숙변처럼 고인 욕심을 조금은 흘려보내자.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과 몸을 느껴 진정한 충만감을 맛볼 것이다.

최미희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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