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주의자들의 역사인식
반미주의자들의 역사인식
  • 경남일보
  • 승인 2013.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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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 (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반미주의자들의 역사 인식을 알려면 아무래도 80년대에 ‘한길사’가 기획 출판한 ‘해방전후사에 대한 인식’이란 책을 훑어보아야 한다. 이 책의 집필자들의 주장들이 상당정도 반미주의자들의 역사인식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방대한 양의 저술들을 서울대학교 이영훈 교수가 정리한 것을 보면 좀 더 이해하기에 빠를 것 같다. 요약하면 이렇다.

반미주의 학자들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제의 지배체제는 반제반봉건(反帝反封建)민주주의 혁명여건을 조성해 주었고 해방은 그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할 가장 좋은 시기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혁명의 적기(適期))

그러나 남한에서 미국의 점령군이 반민족적인 지주와 자본가 친일관료와 친미세력들과 힘을 합쳐 반혁명세력을 형성해 나가자 이들의 탄압에 대항하여 혁명세력으로 무장투쟁을 저항했으나 결국 실패하는 바람에 민족이 분단되고 대한민국이 성립되었다.(대한민국은 잘못 태어난 나라)

북한에서는 소련 진주군(進駐軍)이 혁명세력과 협력하여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혁명을 순조롭게 진행시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는데, 그 공화국이 바로 남한을 반혁명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민족을 통일할 이른바 ‘민주기지(民主基地)’다.(혁명기지라는 얘기)

결국 이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인식의 기본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은 타도의 대상”이고 “미국은 악의 축”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시각으로는 북한은 혁명세력이고 남한은 반혁명세력이기 때문에 그 대립은 불가피한 것이고 반혁명세력인 대한민국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쩌면 자연적으로 나올법한 결론이다.

따라서 6·25전쟁은 어느 쪽이 도발했느냐와는 관계없이 남한의 ‘반혁명 반민족정권’과 북한의 ‘혁명적 민족적 민주기지’정권이 군사적으로 충돌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이 충돌의 본질은 계급적 민족적 견지에서 새로운 사회를 추구하려고 했던 한국 민중과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관철시키려 했던 미국과의 대립이었고 미국이 아니었으면 혁명세력이 승리할 수 있었으나 미국 때문에 승리하지 못했다는 기본인식에서 반미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80년대의 논객들은 다음과 같은 시각을 가지고 우리사회를 진단한다.

첫째 한국사회는 미 제국주의 지배하에 있는 사회체제다.(식민지)

둘째 남한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하나 민족분렬이 고착화 되고 자립적 민족경제가 파괴되었다고 한다면 반(半)봉건상태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반봉건경제)

셋째 이러한 남한 사회의 변혁을 위해서는 민족 전체적 시각이 요구된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난 ‘민주기지’인 북한으로부터의 변혁역량을 적절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북한에 의한 통일)

넷째 이점은 남한사회의 변혁운동이 한국전쟁을 전후한 혁명운동의 역사적 전통 위에 있음을 의미한다.(빨치산이나 게릴라전과 같은 전통계승)

다섯째 이에 북한사회주의 건설과정의 철학적 기초가 된 ‘주체사상’을 남한 변혁을 위한 사상적 기초로 삼아야 한다.(주체사상의 도입)

여섯째 이러한 역사적 전제에서 남한에서의 변혁운동은 프로레타리아트 독재의 제1단계로써 노동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이어야 한다.(북한체제의 이식(移植))

“1978년부터 89년까지 전 6권으로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45년 해방을 전후한 한국현대사에 관한 연속기획물로는 최초라는 점 뿐 아니라 그 책을 학습한 세대가 한때 집권세력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언론은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언론은 “이 책을 읽으면 왜 노무현 전대통령이 취임을 전후한 몇 차례의 공적 연설에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두고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했다고 비판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논자들의 주장이 하도 암호 같아서 괄호를 치고 필자가 해석을 해 놓았지만 이런 역사인식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일부 좌파 인사들에게는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나 않은지 모를 일이다.

학계나 교단, 노동현장이나 정치권, 심지어는 문화계와 종교계에 이르기 까지 내부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역사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북한으로부터 얼마나 더 뜨거운 맛을 보아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김중위 (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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