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메었던 나무도 해마다 세금을 낸다는데…
전함 메었던 나무도 해마다 세금을 낸다는데…
  • 경남일보
  • 승인 201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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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구절산을 찾아서
1.구절산 가는 길의 당항만 갈대숲
1.구절산 가는 길의 당항만 갈대숲
 
 
 
모처럼의 쉬는 날이 생겨서 바깥나들이를 계획했는데 마음에 둔 곳이나 계절에 걸맞는 곳이 당일의 형편과 맞아 떨어지지 않아 속상해 하는 사람들이 은근히도 많다. 그래서 멋 찾고 맛 찾아서 전국을 두루 섭렵하는 사람들을 보고 ‘무슨 팔자를 타고 났기에’ 하고 내심 부럽기도 하여 은근 슬쩍 부아도 내본다. 먼 나라 이웃나라 여행도 아니고 하루 아니면 일박인데 심통날 일도 아니다. 때맞추어 가면 북새통이고 소문만 듣고 가면 속빈 강정이다. 나들이 길은 날 잡으면 일 생기고 소문내면 산통 깬다. 길동무 없으면 구름을 벗 삼고 말동무 없으면 바람소리 벗을 삼아 그저 홀가분하게 갈수 있는 만큼만 가서 일상의 고뇌를 잠시 벗어 놓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가슴에 새기며 어제의 나는 현장에 풀어 놓고 오늘의 나는 한 발짝 물러나서 눈가는 대로 보기만 하면 돌아 올 때는 온갖 것들이 다 좋았고 내일의 내가 보여 더없이 좋아진다. 온갖 타령일랑 하지를 말고 길을 나서기만 해봐라. 지지리 궁상이 가노라 하직하고 삼라만상은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 있다. “국 식어요! 밥 잡숴요!” 밥상머리에서 들었던 소리를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35번 고속도로 하행선을 따라가다가 동고성 IC에서 요금소를 나와 동해면 구절산을 찾아 가기로 작정하고 가는 길에 충무공께서 전함들을 메었던 전승목도 보고 기생 월이의 고혼이 잠 못 드는 당항만 갈대밭과 꼬부랑 소나무도 보고 폭포암을 들릴 요량으로 길머리를 회화면 쪽으로 틀었다. 14번 국도를 따라 3km 남짓한 5분거리의 삼락삼거리에 닿아 거루, 동해 쪽으로 차를 돌려 세워놓고 빤히 보이는 전승목을 향해 4차선 도로를 건넜다. 철 이른 가을이라선지 아직은 잎이 푸르러 무성한 회화나무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안전하게 건너나 하고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섰다. 수령500년의 회화나무는 도로 쪽으로 등이 휘어져 받침돌을 고였는데 당항포해전을 승리로 끝내고 충무공이 전함을 메어 두곤 했던 나무라하여 전승목이라하며 주민 이대명씨가 400여평을 제답을 받혀서 전승목은 엄연한 지주로 등기되어 매년 토지분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단다. 전 前 대통령과 고액체납자들이 이를 보면 어떠하랴. 풍상의 골은 세월의 깊이가 버거웠는지 굽은 등 쪽은 썩어서 골이 파인 자리에 또 다른 종의 나무가 싹이 터서 백여년을 자라서 거목이 되었건만 전승목은 아기인 듯 등에 업고 잔정까지 품은 채로 옛 역사를 말없이 일러준다. 손주나 자식 달라고 애가 타서 빌어보면 충무공의 정기 받은 아기를 점지해 줄 것만 같은데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산신, 수신, 목신의 영험함을 두루 갖췄다하여 삼신목이라 부르며 신성시 하는 당산나무이다.
 
2. 구절폭포와 폭포암
2. 구절폭포와 폭포암


조심스럽게 길을 건너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내 당항포의 끝자락이 강물처럼 가로 누워 수 십만평의 갈대밭이 끝없이 열렸는데 이삭을 길게 뽑은 갈꽃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어 또 다른 장관이다. 여기엔 잊어서는 안 될 잊혀져가는 이야기가 길손의 발목을 또 한 번 잡는다. 임란 때 왜선은 왜 이 깊은 당항만 끝자락까지 와서 전멸하여, 목이 베인 머리가 둥둥 떠서 호수를 이루었다하여 ‘머릿개’와 ‘두호’’라는 지명까지 남기게 했던가. 수상한 숙객을 만취케 해 놓고 품속을 뒤져 침공을 위한 첩자의 지도에다 당항포에서 남해바다로 잇는 지름길처럼 고성읍땅을 바다로 변조했던 기생 월이의 혜안이야말로 당항해전을 승전으로 이끌어 낸 숨은 공적이 아닌가. 사당이라도 있었으면 술 한 잔 올리고 돌아서면 발걸음도 가볍겠건만 죽임을 당하거나 자결을 하지 않았으면 호국순절이 아니던가. 구국의 영령 앞에 미안하여 죄스럽다. 주막집 주모도 곱추할머니로 전해 오고 왜적의 머리가 떠서 ‘두호’요 속았다하여 ‘속씨개’로 지명까지 또렷하건만 명월인지 추월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저 끝자나 부르던 시대라서 ‘월이’로만 전해 오는데 반상의 차이 인가 무심한 세월인가 아니면 생각 없는 행정의 소치일까 군담이 절로 난다. 넋두리 하다간 구절산은 커녕 반절도 못갈 것 같아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솔고개의 굽은 소나무를 두고 갈수 없어서 거산삼거리에서 잠시 우회전을 했다 1km 남직한 거리에 한 맺힌 설부인의 정절비각 옆으로 허리가 90도로 굽은 채로 수평으로 굵어져서 고임목을 받혔는데 끝자락이 다시 90도로 간신히 하늘을 향한 소나무가 마주한 소나무와 수백 년 세월을 함께 푸르며 애달픈 사연을 오롯이 간직한 채 오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차를 돌려서 1010번 지방도를 따라 당항포 바닷바람을 가르며 동해면을 향해 한참을 달린 끝에 한내삼거리에 닿았다. 우회전을 하자 “철성 이공 숙렬의 처 진양강씨 효열행실비”의 돌 비각 옆에서 왼손편의 외곡마을로 들어서라는 구절산 폭포암의 안내표지판이 도로확포장공사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길안내를 하고 섰다.

빤한 들길을 가로 지르면 미로 같은 마을안길을 피할 수 있어 좋다. 마을 끄트머리를 벗어나면 야트막한 산기슭은 공동묘지가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고 계곡을 가로 막은 용문저수지를 지나서부터 포장도로가 말쑥하게 깔려선지 구절산 준봉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꽤나 널따란 비포장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서너 굽이의 모롱이를 돌며 비탈길을 오르는데 아람이 벌어진 동백열매가 포장도로에 지천으로 깔렸다. 커피의 원두씨알 보다는 훨씬 큰데 잘 볶아진 색감 같아서 깨물어 보았더니 노르스름한 알갱이가 옹골찼다. 먼 옛날도 아니건만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머릿결을 언제나 반지르르하게 윤기를 나게 했던 동백기름이 예서 낫다니 쪽진 머리의 젊은 날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새삼스러운 그리움도 아니건만 무단이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까닭을 내 어찌 모르랴.
 
3. 구절산에서 바라본 당항포구
3. 구절산에서 바라본 당항포구


계곡의 물은 가뭄으로 말랐고, 폭포수는 비룡이 승천을 해버려서인지 시꺼멓게 암반의 속살을 들낸 채 수 십 길의 벼랑을 이루며 급경사로 늘어졌는데, 폭포 왼편으로 단청이 화려한 폭포암의 절집이 깎아지른 벼랑 아래에 가까스로 달라붙어 길손을 내려다보며 가파른 108계단을 오르라고 기다린다. 중간쯤이나 올랐을까 한데 오른 편으로 관음전은 감쪽같은 인조 석굴이지만 용왕각은 문을 달기 위해 석굴 끝에 추녀만 잇댄 완연한 자연석굴이다. 법당 옆의 흔들바위는 석벽 어디에서 떨어져 내려서 벼랑 끝에 아스라이 멈춰선 커다란 바위인데 밀어서 단번에 흔들리면 소원성취를 이룬다고 쓰여져 있다.

서있는 자리도 아찔한 벼랑인데 등 뒤로의 깎아지른 천인단애의 절벽은 굴곡과 요철의 오묘한 자연조화가 멋의 극치인데 폭의 너비도 대단하거니와 수직의 높이도 가늠조차 어려워 웅장하고 장엄하다.

관음전 앞을 가로질러서 용왕각 앞의 돌계단을 내려서면 법당 뒤의 석벽은 또 하나의 폭포를 골짜기로 삼아 건너편으로 이어져 다시 절벽을 이루는데 절집을 둘러 싼 석벽의 웅장함이 별천지여서 서산대사도 사명대사도 임란의 전술전략을 예서 꾸몄을까?

벼랑길을 아스라이 따라 돌아가면 아홉 폭포에 아홉 번을 목욕하고 아홉 번을 불러야 친견할 수 있었다는 구절도사는 오랜 옛날에 열반을 하셨는지 아니면 어딘가로 홀연히 떠났는지 호암석굴은 산신각의 편액만을 달고 기도처로 마련돼 있다.

여기서부터 가파른 산길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키를 같이 한 도토리나무로 하늘을 덮었는데 키가 작은 잡목들은 기를 못 펴고 옴츠렸다. 큰 사람 밑에는 얻는 게 있지만 큰 나무 밑에는 해만 입는다고 ‘인장지하 득이요 목장지하 해’라고 했던가. 그러나 크다는 사람마다 이인자의 싹은 미리부터 자르고보는 현실이 애달프고 애석하다.

자잘한 절석들로 가득한 자갈길 같은 된비알을 오르면 삐죽삐죽한 바위들이 목을 늘이고 내려다보는데 자라 같다 했더니 딴에는 태초부터 살아 왔다고 십장생인 거북을 흉내 내며 길게 목을 늘인다. ‘두어라 시빗거리도 아닐 걸’ 하고 마음 편히 걷는데 홀로 걷는 객이 염려스러운지 다람쥐가 간간이 쫑긋쫑긋 앞서간다. 꼬리를 등짝에 짊어진 녀석들은 벌써 곡간을 다 채웠는지 토실토실한 도토리가 자국마다 밟히는데 부처손 군락지를 벗어나자 크고 작은 바위들이 날도 닳고 모도 닳아 서로를 껴안은 채 고산준봉에서 외로움을 달래며 서로를 의지한다. 구절산 559m의 정상에 오르니 철마산의 전설이 능선을 넘어오고 당항포 승전의 북소리가 귓전에 쟁쟁하다./시민기자

4. 구절산 정상
4. 구절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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