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라
주민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라
  • 경남일보
  • 승인 2013.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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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객원논설위원, 경남교육포럼 상임대표)
- 산청의 거점학교 실패를 보며 -



지난달 산청군에서는 학교 통폐합과 관련한 주민투표가 있었다. 군내의 모든 공립 중·고등학교를 통합해서 각각 2개의 거점학교를 만드는 정책에 대한 찬반투표였다. 교육청은 전체 학부모의 75% 이상이 찬성을 하면 이 정책을 추진해서 빠르면 2015년에 거점학교를 출범시키겠다고 자신에 차서 말했다.

그런데 이 정책에 대한 주민투표의 결과는 부결이었다. 학교 급별로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전체 학부모의 63%만이 이 정책에 찬성을 하였다. 6월 26일 도교육청이 산청군청에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이 사업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 거점학교는 3개월 만에 일단 무산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필자는 네 가지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이른바 ‘추진협의체’의 구성이다. 교육청은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교육청에서 주도하기보다는 홍보를 한 뒤 산청지역 학부모, 도·군의원, 지방단체 등으로 구성된 협의회를 만들어 권역별 대상학교 설립에 따른 제반사항에 대해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추진협의체가 주민들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진행과정에서의 공정성 논란이다. 교육청이 주민투표를 위한 투표용지를 보내면서 찬성을 유도하는 전단지를 같이 보내면서 이 논란이 불거졌다. 선관위를 개표과정에 참여시키면서까지 공정성을 지키는 노력을 했지만, 교육청은 정작 결정적인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세 번째는 주민들 간 사회적 갈등의 조장이다. 찬반이 나뉠 수 있는 정책의 추진에 있어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이웃 간에도, 형제 사이에도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대화와 설득의 과정을 통해 이런 서로 다른 생각을 하나로 통합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면 사회구조는 더욱 공고해지지만, 어설프게 변죽만 울려 놓고 행정이 빠져 버리면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정책 실패가 주는 행정낭비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준비기간까지 치면 이번 사업에 대해 경남도교육청은 최소 6개월 이상의 행정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다가 실패하면 그 기간의 행정은 많은 비용을 치르게 된다. 하지 않았으면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을 기회비용까지 치면 그 행정낭비는 대단히 크다. 그런데 이 행정낭비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한편 교육청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와 지역언론의 보도를 보면, 교육청은 거점학교 사업에 대해 재추진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참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설프게 시작해서 지역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며 무산된 정책을 신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다시 추진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주민자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주민들을 아예 무시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주민을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치밀한 사전 준비도 필요하다. 교육청은 이 정책이 꼭 필요했으면, 그 추진협의체의 구성에서부터 지금까지와는 달랐어야 했다. 주민 대표성을 의심받지 않았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도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았어야 했다.

반대를 하는 주민들도 그 과정에 형평성에 맞게 참여시켰어야 했고, 필요했다면 토론회와 공청회도 열어 주민들을 설득했어야 했다. 사전 조사를 통해 초등학교 학부모에 비해 중·고등학교 학부모의 반대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도 미리 파악했어야 했고,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해 더 적극적인 설득을 준비하는 그런 주도면밀함이 있었어야 했다.

필자는 실패한 것에 그치지 않고 무책임하기까지 한 이번 정책 무산을 보며 교육청이 주민과 학부모를 너무 쉽고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학부모와 동문을 포함한 지역사회는 민주주의의 토대다. 백성이 왕이다. 이것이 풀뿌리 민주주의다. 교육자치도 여기서 출발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박종훈 (객원논설위원, 경남교육포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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