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지 (아동복지전문기관 홍보담당)
‘그 사건’을 겪은 후 가족의 일상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지 알아야 한다는 괜한 의무감으로 나는 그 영화와 맞서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보길 잘했다. 영화 ‘소원’ 얘기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동 성범죄 ‘조두순 사건’이 발생한지 5년. 세상은 점차 그 아이를 잊어 갔다. 직업상 나는 여전히 아이의 이름을 빈번히 들었고, 가끔은 언급했다. 아이의 상처를 다시 한 번 들춘다는 죄책감과 같은 피해를 겪는 이가 더 이상 없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고백하건대 그동안 나는 아이가 다시 행복해질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일은 너무나 큰 비극이며 아이가 받은 상처는 평생토록 씻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하고 분노했었다.
예상대로 영화는 슬펐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이 밀려오는 눈물의 끝은 불편함이나 분노가 아니라 아주 작고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희망’이었다. 영화는 우리가 보려하지 않았던 ‘그후’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우리가 경악하고 분노하고 위로하다 잊어버린 사건은 당사자들에겐 여전히 ‘현재’이며 ‘오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그려내는 오늘은 ‘이른 봄’을 닮았다. 아직 쌀쌀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완연히 따뜻해진 내일이 오는 게 당연한 이른 봄의 날씨 말이다.
어느 평론가는 이 영화가 ‘아동 성폭행 피해자와 그 가족을 치유할 수 있는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판타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현실이 아니라 비웃기도 하고, 누군가는 진지하게 믿고 소원하는 것이 판타지의 속성이라면, 나에게 그 의미는 전자였다. 타인의 비극을 지켜보는 것이 불편했던 나의 마음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치유할 수 없다고 믿었기에 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그런 것.
아이와 가족이 이웃과 사회의 품안에서 천천히 치유될 수 있는 것이 ‘판타지’라면, 이제부터 나는 그것을 진지하게 믿어볼 생각이다. 용이 나오는 것도, 신이 나오는 것도 아닌 사람 사는 이야기가 판타지로 명명되어야 하는 사회와 현실이 서글프긴 하지만 말이다. 소원은 이룰 수 없는 일을 비는 것이 아니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하는 일이 그 천천한 걸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강민지 (아동복지전문기관 홍보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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