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의 적자 경제학
결혼식의 적자 경제학
  • 경남일보
  • 승인 2013.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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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일요일 초등학교 친구 혼사에 참석했다가 동창회 새 명부를 얻었다. 반가운 후배이름을 본 김에 카톡을 했더니 부산 결혼식에 갔다가 진주로 가는 길이란다. 가을날, 특히 주말이면 너도나도 결혼식으로 바쁘다. 바쁠수록 이익이 생겨야 하는데 ‘결혼식 경제학’만은 적자가 커져서 한심하다.

친구 혼사엔 주례가 없었다. 신랑·신부가 혼인 서약문을 읽고 신랑아버지가 성혼선언을 했다. 이어 신부아버지가 축사를 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장점이 많다. 주례를 모시기 위해 힘쓰지 않아서 좋다. 천편일률적인 주례사보다 혼주들이 하는 축사는 내용이 독특하고 정보가 들어 있어 하객들을 집중시킨다. 이처럼 결혼식은 진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혼식의 낭비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 무엇보다 너무 넓은 참석 범위로 인한 낭비가 그렇다. 가까운 사이라면 천명이고 만명이면 어떠랴. 하지만 결혼식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깝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혹은 체면 때문에 온다는 걸 혼주도 알고 하객도 안다. 서민들의 주고받기식 ‘결혼식 경제’는 모든 참여자에게 적자를 안긴다. A, B 두 사람이 각각의 혼사에 교차로 참석해 10만원씩을 축의금으로 내고 식사를 하고 왔다면 각자의 일당과 교통비만큼 적자다. ‘작은결혼식’ 캠페인을 하고 알 만한 사람들이 ‘나라가 망할 일’이라 해도 고쳐지지 않는다.

올 초 첫딸 혼사를 치른 한 고위공직자는 작은결혼식 서약도 하고 해서 축의금을 안받는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어려웠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축의금을 냈고 그걸 돌려받는 건데 왜 포기하느냐는 가족들의 저항이 너무 심했다. 당초 축의금을 안받을 바에야 몇 사람만 참석하는 작은결혼식도 생각했다. 그런데 사위도 반대하더란다. “한번 하는 결혼식인데 손님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친구들에게도 폼잡고 싶다.” 그래서 보통규모대로 예식을 하고 자신만 축의금을 안받는 절충을 했다고 한다. 이미 축의금을 많이 냈으니 돌려받아야 하는 이유, 혼인 당사자들의 의미부여, 이런저런 현실 때문에 서민들 보고 이런 일에 앞장서라는 것은 무리다.

대기업 등이 앞장서야 하는데 그들의 경제학은 흑자여서 더 어렵다. 삼성 그룹의 예를 보자. 임원들은 대체로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수백명의 임직원과 협력업체 사람들을 불러 혼사를 치른다. 임직원들은 축의금을 내고 혼주는 축의금을 집으로 가져간다. 혼주는 수억원의 축의금은 당연히 자신의 상부상조의 결과물로 여긴다. 그러나 아니다. 그들이 교차로 낸 축의금은 자기 돈이 아니라 회삿돈이었다. 축의금이 나온 판공비나 접대비는 회사를 위해 쓰라고 제공되는 돈이다. 결국 회삿돈을 축의금이란 이름으로 서로 나눠 횡령하는 것이다. 은행의 지점장만 지내도 같은 원리다.

이걸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이건희나 구본무 회장이다. “우리 회사 임원들은 축의금 안받는 결혼식을 합시다. 왜 회삿돈을 그렇게 나눠 갖습니까?” 그래야 서민들의 적자 결혼식 경제학도 고쳐질 것이다.

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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