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새순 따서 정갈함으로 빚은 명인의 술
봄 새순 따서 정갈함으로 빚은 명인의 술
  • 임명진
  • 승인 2013.10.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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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전통주 이야기> 함양 솔송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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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출시된 제품을 포장하고 있다.
 
 
 
“술 맛은 이따가 천천히 보시더라도 마을구경 부터 먼저 꼭 하고 가세요”

취재를 마치고 막 일어서려는 기자에게 박흥선(60)명인은 “여기 온 김에 마을은 꼭 한번 보고 가라”고 권유했다.
직접 안내하겠다는 박 명인의 호의를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뒤를 따라 나섰다.
취재 장소인 명가원 본사에서 마을까지는 차로 불과 2~3분 거리.
박 명인이 안내한 개평마을은 함양을 찾는 외지 여행객들이라면 한 번쯤 찾는 한옥마을이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한옥마을로 유명한 안동보다 여기가 더 낫다고 말 할 정도로 고풍스런 한옥과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돌담길이 시야에 들어온다.
천천히 마을을 걷노라니 “아! 이래서 함양 솔송주가 유명하구나. 여기서 빚은 술이니 그 맛이 깊을 수 밖에…”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동 정씨 가문은 수백년 전부터 개평마을에 집성촌을 이루며 모여 살았다.
수십여 채의 한옥이 당시의 영화를 증명하듯 늘어서 있고, 그중 조선 오현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이 유명하다.
솔송주는 바로 이 하동 정씨 가문의 가양주로 5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양반 가문답게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명망있는 선비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 들었는데 그때 손님들에게 자신있게 내놓은 가양주가 바로 솔잎, 송순으로 빚어낸 솔송주다.

가양주로 전해 내려오던 솔송주가 전국에 제대로 알려지게 된 것은 박흥선 명인에 의해서다.
함양읍 태생인 박 명인은 36년 전에 하동 정씨 가문으로 시집을 왔다.
그런 그녀에게 시어머니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솔송주 빚는 법을 전수했다.
박 명인은 체질적으로 술을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어머니에서 며느리에게 전해 내려온 맥을 그녀 대에서 끊을 수는 없는 일.
그녀에겐 타고난 미각과 후각이 있었다.

“처음에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술을 만든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 하시던 분들도 많았는데, 직접 맛 보시고는 다들 절대미각의 소유자라고 말씀하시곤 해요. 근데 정말 쉽지 않았어요. 보다 뛰어난 맛을 내기까지 피나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박 명인은 솔송주를 최고의 전통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솔송주는 1996년 술 도가인 명가원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대량생산 체제로 접어든다.
박 명인에게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전 국민이 솔송주를 즐길 권리가 있다는 주변의 권유가 끊이지 않았다.

기왕 시작하는 거면 제대로 술을 만들어 보자. 대한민국 최고의 술을 만들어 보겠다는 그녀의 생각은 회사이름인 명가원에서 드러난다.
박 명인은 술을 빚을 때마다 조상들의 슬기로운 지혜에 탄복하게 된다고 했다.
“어떻게 솔잎으로 술을 빚을 생각을 했을까. 자연의 산물을 최대한 이용한 조상들의 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 조상들의 얼을 담아내려고 솔송주도 끊임없이 연구개발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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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선 명인은 농촌진흥청과 기술 제휴를 통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귀족층에서 즐겨 마시전 녹파주를 복원 생산하고 있다. 도수는 15도로 청주와 비슷하며 일본의 사케와 대항하는 전통주로 최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판로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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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송주는 지리산 청정지역인 함양군에서 자라나는 자연 농산물로 만든 약주로 500년 전통을 자랑한다.

솔송주에 들어가는 솔잎은 노화를 방지하고 심장이나 뇌졸증, 고혈압, 당뇨 등의 각종 성인병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봄에 새순이 나올때 채취한 송순과 토종 찹쌀, 곡자(누룩), 맵쌀 등이 더해진다.
이 모든게 지리산 청정 지역인 함양군에서 생산되는 일급 재료만 쓴다.
술을 빚을 때 들어가는 물도 지리산 청정 암반수를 사용한다.

박 명인에게 술을 빚는 순간은 경건하고도 엄숙한 시간이다. 옛 시절 항아리에 술을 빚을 때 박 명인은 목욕 재계를 하고 깨끗한 의복을 골라 입었다.
그녀에겐 술을 빚는다는 것은 마치 좋은 술을 만들어 달라고 비는 마음의 발로다.
“약주는 굉장히 청결해야 합니다. 똑같은 재료를 써도 항아리마다 발효가 다 다릅니다. 그게 참 오묘한 거지요. 그만큼 온도관리가 중요하고,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선 정성과 열정을 쏟아야 가능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탄생된 솔송주는 마실 때는 부드러우면서도 코 끝에는 은은한 솔잎향이 느껴지면서 감칠 맛이 난다.
과거 고택을 들락거리며 솔송주, 한 잔 술을 즐기던 선비들도 이런 깨끗한 맛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최고의 술을 만들겠다는 그녀의 노력에 보답인 듯, 국내에서는 지난 2007년 열린 남북정상회담때 공식 만찬주, 2008년 람사르총회 때는 공식 건배주로 지정되면서 그 품질을 인정 받았다.
주력 제품인 ‘담솔’은 3년 연속 우리술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진가를 알렸다.

박 명인이 계승하고 있는 솔송주는 전통주로는 처음으로 지난 해 그 역사적 중요성과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술 빚는 과정이 경남의 무형문화재 제35호(정식 명칭 함양 송순주)로 지정됐다. 박 명인은 또한 농림부가 선정한 식품 명인(제27호)이다. 도내에서 식품명인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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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선 명인은 약주외에 리큐르주, 과실주로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과실주의 경우 복분자와 머루로 빚어낸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솔송주 명인 박흥선씨
“우리 지역에서 나는 전통주, 꼭 한번 즐겨 보세요”

조선시대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선비의 기상이 물씬 느껴지는 선비의 고장, 개평마을에서 박 명인은 6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새댁으로 통한다.

양반 가문에 시집와 지금은 국내 최고의 전통주 명인의 반열에 오른 그녀를 만났다.

-솔송주는 어떤 술인가.

▲솔잎과 송순을 이용한 자연에서 나는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는 약주다. 원래는 함양 송순주라고 불리웠는데, 주조 허가를 받기 위해 등록을 할 때 타 지역에서 먼저 등록한 송순주와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한글 모음을 사용해 솔송주라고 정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갈수록 주질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현대식 설비를 갖추고 연구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약주와 리큐르주, 복분자로 담근 과실주 등으로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힘든 점을 꼽는다면

▲품질로는 자신있는데 정작 소비자들이 우리 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술은 사케 등의 외국 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우리 국민들께서 정말 좋은 전통주가 우리 주변에 많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100만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제품도 있던데

▲자신감의 표현이다. 전통주가 이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도자기 하시는 분과 의기투합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분청사기에 술을 담았다. 1년 정도 연구끝에 출시한 내게는 하나의 작품이다. 벌써 몇 점은 판매가 됐다. 안 팔리면 가보로 삼겠다.(웃음)

-앞으로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세계의 술과 경쟁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술을 만들고 싶다. 한발짝 한발짝 나가면 언제가는 가능하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전통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 몸에는 우리 술이 제일 맞다. 애국하는 마음으로 술을 드실 기회가 있으면 전통주를 꼭 한번 드셔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글·사진=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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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두 고택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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