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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새 슬피 울면 겨울이 온다는데…경남일보 선정 100대 명산 <75>천성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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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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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억새숲 멀리 보이는 산이 천성산1봉이고 철망너머일대에 미수거된 지뢰가 깔려 있다.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옛 노래 ‘짝사랑’ 가삿말에 등장하는 으악새는 새가 아니다. 풀 ‘억새’를 말한다. 동물이 아니니 울일도 웃을 일도 없다. 으악새가 우는 것은, 겨울이 시작되기 전 거센 바람이 불어와 억새줄기를 휘감으니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는 것뿐이다. 사람들을 착각한다. 으악새가 운다고 하니 이 새는 적어도 천연기념물 몇호 쯤 되는 희귀한 새일 거라고.

그런데 새가 아닌 억새가 우는 사연이 있다. <<억새는 애시 당초 신의 주문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소식을 전하는 새였다고 한다. 하지만 신의 주문을 어기고 사람들에게 다가올 겨울철 추운 날씨를 예보하는 전령사 역할을 덤으로 했다. 이는 신의 노여움을 샀다. 사람에게 이롭지만 신은 금기시했기 때문. 새는 결국 죽었다. 그 자리에 억새가 피어났다. 새의 깃털처럼 생긴 억새꽃을 달고….>>(한정영 님의 글 축약)

여기에 억새의 비밀이 있다. 죽어서도 특유의 흐느적거림으로 꽃을 흔들면서 바람의 세기와 방향, 닥쳐올 겨울을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있다. 사람들의 소원을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억새는 지금도 우리의 산야에서 휘파람소리를 내며 ‘겨울을 준비하라’고 소리친다.

천성산 가을 억새는 센바람에 심하게 흔들렸다. 은빛 꽃술이 채 피어나기도 전에 갈바람이 불어와 꽃술을 움켜쥐고 날아가 버렸다.

억새는 말했다. 나는 바람이 있어 행복하다. 바람이 있기에 존재가치가 있다는 걸 너무 잘 안다. 너로 인해 꽃술도 더 멀리 날려서 더 넓은 곳에 씨를 뿌려야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추위소식을 전해야한다. 그러나 부탁이 있다. 너무 심하게 불지는 마라. 줄기는 말라비틀어져 제 아무리 센바람에도 견딜 수 있으나, 꽃술은 여리고 여려 바람에 ‘훅∼’ 날아가 버릴 수도 있으니, 사람들이 추위소식을 다 알기 전에는 살살 좀 불어라. 나는 다가올 겨울을 사람들에게 전해 줘야한다. 그래야 그들이 초가도 새로 이고 김장도 하며 겨울 날 땔감도 준비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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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제2봉의 실루엣, 오른쪽 끝 봉우리가 천성산 1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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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숲
 
 

억새의 산, 천성산을 다녀왔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했던 지율스님도 생각이 났다. 스님은 천성산 도롱뇽 보호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했다. 그러나 지금 땅속으로는 고속철도가 총알처럼 달리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도롱뇽도 잘 있고 물도 콸콸 쏟아지고 있다 한다. 그래서일까. 스님은 역설같은 선문답을 남겼다. ‘슬프게도 올 봄 천성산엔 도롱뇽 천지였다’ 고.

▲천성산(千聖山)은 양산 웅상읍 상북면 하북면을 가르는 경계다. 영남알프스 산군 중 최남단에 있다. 예전에는 공군부대가 있었던 제1봉(922m)을 원효산, 제2봉(812m)을 천성산이라 불렀다. 몇해 전 양산시에서 2개 산을 통합해 천성산으로 변경하고, 기존의 원효산을 천성산 최고봉 제1봉이라 하고, 천성산을 제2봉으로 했다. 산아래 내원사 홍룡사가 있다.

▲산행은 내원사 →나무계단→전망바위→1,2봉갈림길→제2봉→임도만나는 곳→은수고개→제1봉(정상)→화엄늪→홍룡사 반환 후 택시를 이용 내원사로 회귀했다.(택시비 1만4500원) 휴식시간 포함 5시간이 소요됐다.

▲이번 산행은 두 가지의 산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내원사에서 제2봉을 거쳐 은수고개까지는 참나무 굴참나무 단풍나무, 정상의 암릉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육산 산행이고, 은수고개서부터 제1봉 화엄늪은 그야말로 억새의 산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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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오전 9시 10분, 내원사 일주문을 통과한다. 주차비, 문화재관람료를 받는다. 차로 10여분 후 내원사 앞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다. 천성산 2봉 방향은 계곡 쪽으로 나 있다. 계곡은 식수, 즉 그린존으로 출입이 금지돼 있고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르면 천성산 2봉 방향이다. 내원사는 주차장에서 오른쪽 다리 건너 있다.

내원사는 통도사 말사이며 대표적인 비구니 수도원.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며 창건 설화가 송고승전에 기록돼 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된 금고(金鼓)가 유명하다.

산에 들면 적당한 크기의 굴참나무가 등산로 양옆으로 빽빽하다. 야생조수보호구역 안내판과 제2봉 2.6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계곡에 듬성듬성 나 있는 단풍나무 참나무는 아직 단풍은 사치라는 듯 짙푸르다. 오른쪽 물길을 건넜다가 다시 왼쪽 능선에 붙으면 본격적인 오름길. 이때까지만 해도 걷기 좋은 고즈넉한 길이다. 다람쥐가 사람이 반가운 듯 바람처럼 뛰어다닌다. 평소 허투루 봤던 다람쥐가 새롭게 보이는 건, 이 계절 그들도 겨울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토리를 입에 잔뜩 넣고 있다.

성근 바위들이 많아서인지 등산로를 나무계단으로 설치해 놓았다. 조난방지용 축광표지판도 있어 야간산행에도 도움이 될듯하다.

고도를 높이면 수림사이로 단풍 든 나무가 언뜻언뜻 보인다. 지금이라도 당장 붉은 빛을 토해내 산야를 물들일 기세다.

진정 나무들의 속마음이 어떨까. 수분이 모자라고 태양빛은 강렬해 하루 빨리 부담스러운 나뭇잎을 떨궈 내 추운 겨울을 대비해야 할 일인데…. 사람들은 “단풍이 좋다”한다. 생존을 위한 그들의 일일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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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철탑


오전 10시 19분, 출발 1시간 넘어 ‘천성산 2봉 0.9km이정표’가 있는 갈림길 안부에 올라선다. 먼 산 허리에 송전철탑이 유난히 많이 박혀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밀양송전탑이 생각나는 지역이다. 어디 송전탑만 문제가 될까. 국내 유명산 정수리에 꽂혀 있는 통신 시설 안테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2봉정상에 닿기 전 평평한 등산로에서 연리근 하나를 발견했다. 눈길이 가는 쏠쏠한 재미다. 정상 바로 아래 사진 촬영 포인트에 선다. 역광으로 보이는 정상 암릉 실루엣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오전 11시, 출발 2시간이 못돼 천성산 2봉정상에 닿는다. 날카로운 바위들로 구성돼 있다. 먼 북쪽에 정족산, 가까운 북쪽에 공룡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공룡능선은 옹골찬 암릉으로 구성돼 있는 이산 최고난도 코스이며, 2시간 정도 더 소요된다. 남쪽과 동쪽에는 양산시가 위치해 있다. 지율스님이 반대했던 고속철도는 제2봉 기준 동쪽으로 300여m 떨어진 지하구간을 통과하고, 화엄늪이 있는 제1봉에서는 동쪽으로 약 2km떨어진 곳을 통과한다.

은빛 억새가 반짝이는 제1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소나무, 잡목, 관목사이 골골을 따라 고도를 제법 낮춘다. 왼쪽에 가까운 산의 마루금 뒤로 양산시가지 일부가 빼꼼하게 보인다. 이국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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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 웅상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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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늪 억새


오전 11시 24분, 2봉정상에서 20여분 후, 은수고개 0.5km 이정표, 그 옆에 임도가 불쑥 나타난다. 은수고개에서부터 억새의 잔치가 시작된다. 산행객이 별로 없는 이곳에서 뜻밖에 반가운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억새 숲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다. “어느 학교에서 왔어” “꽃피는 학교요” “어디에 있는데” “평산동에요” 20여명에 달하는 남녀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은 활기찼고 표정도 밝아 보였다. 인솔교사는 “양산에 있는 대안학교 어린이들입니다”라고 일러주었다. “안녕히 가세요” 등뒤로 아이들의 인사가 메아리진다. 어릴 적 시골에서 저렇게 숨차게 뛰놀던 때가 있었다. 억새 산의 된비알로 발길을 옮긴다.

고스락을 지나면 드디어 억새의 평원이다. 억새가 춤을 춘다. 으악새가 노래를 부른다. 목화처럼 새하얀 억새꽃이 큰 눈송이처럼 흩날린다. 새의 깃털처럼 보이기도한다. 졸고 있는 억새를 깨우는 바람, 파도치듯 일렁이는 억새의 춤사위, 갓 피어나는 억새, 절정인 억새, 모두 할 것 없이 이 가을에 어울리는 화려한 왈츠 무대….

불현듯 철망이 막아선다. 정상 제1봉으로 가는 길이지만 철조망과 최전방 DMZ에서나 볼수 있는 ‘지뢰’ 붉은 표지판도 나온다. 과거 이곳 제1봉에 공군부대가 주둔하다가 최근 개방되면서 생긴 일이다. 당시 매설했던 지뢰가 곳곳에 남아 있어 등산로를 제외하고 출입을 막았다. 일부 지뢰가 완전 수거되지 않아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절대주의가 필요한 구역이다.

철망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비교적 평탄한 억새지대가 펼쳐진다. 화엄늪이다. 화엄늪은 2002년 2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자연환경변천의 귀중한 기록인 이탄층이 형성돼 있다. 앵초 물매화 잠자리난 흰제비난 끈끈이 주걱 이삭귀개 등의 다양한 습지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신라 원효대사가 1000여명의 승려에게 화엄경을 설법했고, 그들이 모두 성인이 됐다고 해서 천성산이라고 부른다. 제1봉의 원래 이름 원효산은 원효대사에서 유래됐다.

태양과 바람 억새의 고향, 화엄늪은 이 일대 12만4000㎡(2만8000평)넓이로 고원처럼 펼쳐진다. 으악새 슬피 우는 소리를 뒤로하고 산 먼당을 내려서면 다시 활엽수림이 단풍의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홍룡사 옆 홍룡폭포수의 시원한 물줄기가 고단함을 씻어준다. 들머리 출발 후 5시간이 지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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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천성산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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