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님께
J님께
  • 경남일보
  • 승인 2013.10.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혜인 (소설가)
J님!

오늘 저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당신은 우는 저를 가만히 바라보았을 뿐 달래거나 위로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울음이 슬픔이라거나 분노라거나 무엇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환희와 기쁨의 눈물이었다는 것을 아셨던 까닭이겠지요.

그래요. 당신의 말대로 오늘이 제게는 일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빛과 광명의 본체이신 부처님께서 당신의 길을 따를 수 있게 저를 그 너른 품으로 안아 주셨으니까요.

J님!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엄마로, 친구로, 이웃으로, 사회인으로……. 남들에겐 그냥 자연스러운 일들이 제겐 왜 그리도 힘이 들었던지요. 그런 제가 기댈 곳은 부처님의 품뿐이었음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J님!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요. 바닷물은 원래 바다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돌 틈을 지나고 바위를 에두르고 강기슭을 돌아서야 바다에 다다르지 않나요. 다시 한 번 축하해 주십시오. 진심으로 축하받고 싶습니다.

언젠가 제가 부처님을 처음 뵈온 날을 말씀드렸나요?

새벽이었고, 안개가 산을 완전히 삼켜버린 날이었습니다. 터널 같은 현실에서 무작정 도망가고 싶다는 심정으로 올랐던 산길이었습니다. 깜깜한 안개 속을 걸으며 그날 저는 차라리 허방을 디뎌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저를 그렇게 되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순간, 발끝에 쇳덩이 하나가 걸리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살펴보니 부처님의 부러진 팔이었습니다. 순간, 제 등짝을 후려치는 듯한 죽비소리. 미물도 다 제 몫이 있어 태어났는데 어찌하여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나서 그리 못난 생각을 하느냐는 호통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날 저는, 팔이 부러진 채 저만치 쓰러져 계시는 그 분을 안고 미친 듯 달려 내려왔습니다. 지금도 제 방 한 쪽에는 시멘트로 봉합된 팔을 가지신 그 분이 웃고 계십니다. 저는 그 분의 미소를 등불삼아 책을 읽었고, 글을 썼습니다.

J님!

이제부터 저는 속세의 인연을 뒤로 하고 그 분의 말씀을 소설 속에 녹아내려 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누운 자를 앉게 하고, 앉은 자를 일으켜 걷게 할 만 한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어쨌거나 글 쓰는 사람에게 지면이 주어진다는 것은 무당이 굿판을 만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두 달간 이 굿판에서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었습니다. 애독자님들께 제 노래와 춤이 조금이라도 즐거움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소원하면서 말입니다.

J님!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인연이 다하지 않았다면 이생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최혜인 (소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