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울어
누가 울어
  • 경남일보
  • 승인 2013.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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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온통 사랑과 질투에 대한 비통함으로 절절히 눈물 흘리는 도라마르를 보고 연인 피카소는 ‘우는 여자’라는 작품을 남겼다. 거장 피카소를 향해 나약한 그녀가 한 사랑이란 눈물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니 애절한 러브스토리인 셈이다.

계절이 자꾸 발목에 감기는 느낌이다. 물봉선화, 고마리, 쑥부쟁이, 구절초, 억새, 메밀꽃이 절정의 가을을 보여준다. 가을에는 잘 가꾸어진 정원의 꽃보다도 산과 들에 속절없이 피어나는 애잔한 것들에게 한없이 눈길이 간다. 절정은 늘 황홀할 따름이다.

무언가 말할 수 없이 기분이 말랑말랑해지면 저녁 노을을 닮은 다즐링 한 잔을 마셔야 제격이다. 따뜻하고 호젓하게 인생이 깊어지는 시간,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며 마시는 홍차 한 잔에 천천히 느리게 매혹 당한다.

구절초 꽃처럼 반짝반짝하고 허전했던 마음들이 차분해지고 깊어지면 바람이 전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적막이 하는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계절이 주는 풍경에 촉수와 감성이 유난히 발동한다.

‘누가 지금 문밖에서 울고 있는가/누가 지금 쓸쓸히 돌아서서 울고 있는가/그대 꿈은 처음 만난 남자와 /오누이처럼 늙어 한 세상 동행하는 것/작고 소박한 꿈이었는데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세상의 길들은 끝이 없어/한번 엇갈리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어느 먼 보랏빛 저녁 외롭고 황홀한 불빛으로 켜지는가’ 가수 이동원이 곡을 붙여 널리 알려진 장석주 시인의 ‘애인’이란 시다

누가 이 깊어가는 가을밤, 슬픈 듯 괴로운 듯 소리 죽여 가슴속 울음을 태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거부할 수 없는 깊고 어둡고 서늘한 심연이다. 가만가만 지친 그의 등을 다독거려 주고 싶다.

오렌지 빛깔 청춘의 날들은 수레바퀴를 단듯 저렇듯 아스라이 멀어져 갔는가. 지난날은 그저 꿈일 뿐, 회한일지 아쉬움일지 이제는 추수 끝난 들판의 짚단 같은 쓸쓸해진 마음으로 가 닿을 수 없는 세월들이 아득하다.

단풍 든 숲이 화려하게 불타 올랐다가 가벼운 발자욱에도 허무하게 바스라지는 낙엽같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기막힌 눈물의 반전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정호승 시인은 말했다.

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는 것인지, 세상 사는 대가인지, 고통과 상처를 입지 않는 영혼이 어디 있겠는가. 상실한 것들로부터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시인은 어차피 인생은 외로운 것이니 울지 말고 외로움을 견디라 하였지만 이 고통 또한 언젠가 지나가리라 위로를 하며 괜찮다 괜찮다 하고 혼자 온전히 울어 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흘리는 눈물도 보석처럼 가치가 있을 것이고 나를 위해 흘리는 자기 연민의 눈물 또한 치유의 미학인 것이다.

이젠 갈수록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겠지만 나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가벼워질 것이다. 사람이나 사물이든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각각이 가지고 있는 농도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부담스럽지 않다.

창밖은 여전히 가을냄새로 가득하지만 소란스러운 느낌은 없다.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들이 뜨거움인지 차가움인지조차 분별할 수 없는 것들을 조용히 내려놓고 풍경 속으로 침잠하고 있다. 자연의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하지만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계절은 어디쯤인지 인생의 남은 시간을 생각해 본다.

한겨울을 나기 위해 몸을 바꾸는 나무들의 화형식, 그윽하게 낙엽 태우는 냄새를 닮은 요절한 가수 배호의 애수어린 ‘누가 울어’가 가슴에 마구 젖는다. 이 계절을 지긋이 견디는 그대를 위해, 와락 뜨거운 눈물 흘려보는 일이 인간적인 얼마나 인간적인 일인지 문득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겸허하고도 쓸쓸해지는 시월의 가을날이 다 지나고 있다.


황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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