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인 친가족 찾기 캠페인] 밀양출신 장하다씨
[해외입양인 친가족 찾기 캠페인] 밀양출신 장하다씨
  • 곽동민
  • 승인 2013.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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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모국에 눌러앉을 생각입니다"
장하다_9 살
벨기에에서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장하다씨는 한국에 정착하기 전까지 2명의 누나와 아버지, 가정주부였던 어머니와 함께 쭉 벨기에에서 자랐다. 사진은 9살 무렵 가족들과 함께한 휴가지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장하다씨의 현재 모습이다. 한국에 정착한지 7개월째에 접어드는 그는 한국어 수업을 들으며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스페인사람, 프랑스사람, 파라과이사람, 캐나다사람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제야 저는 제가 벨기에사람이라고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갖게 됐고 한국에 오면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한국인이고 한국인이 되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지난해 10월 가을 기운이 완연한 한국에서 한 달간의 휴가를 보낸 벨기에 입양인 장하다(39)씨. 경남일보와의 서면인터뷰를 통해 만난 장씨는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면서 아예 한국에 눌러 앉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장씨는 “짧은 시간 이었지만 있는 내내 편안함을 느꼈고, 또한 마치 한국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한국에 다시 돌아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 배워보지 못한 것을 배우고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라며 “올해 3월 한국에 아예 정착한 뒤 지금까지 제주도, 남해, 부산, 순천, 동해안 그리고 당연히 고향인 밀양을 방문했습니다”고 말했다.

태어난지 2살 무렵.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벨기에로 입양된 장하다씨는 1975년 1월6일 밀양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장씨가 한국에서 찾아낸 친가족에 대한 단서는 입양되던 해인 1977년까지 2년간 부산의 수양가족과 지내다 이들이 다시 당시의 밀양읍사무소에 장씨를 위탁했다는 정도다. 워낙 어린시절이라 장씨 스스로는 한국에 대해 아무런 기억을 갖고 있지 못했다.

1977년 12월8일 장씨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벨기에 Ardennaise(아흐데네즈)지역에 살고 있는 가족에 입양됐다. 낯선 땅의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그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유년시절의 나는 그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음에도 친구들은 항상 저를 존중해주었고 명확하지 않은 제 출생에 대한 어려움을 갖고 살아갈 때 항상 공감을 해주고 이해해 줬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로 이러한 사람들 덕분에 제가 입양인에 대한 강박관념, 그리고 그에 따른 어려움 없이 자란 것 같습니다. 제 유년기 시절의 기쁨은 바로 사람들의 시선과 삶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모두가 저에게 ‘너는 벨기에 사람이고 우리의 가족이야’라고 말해줬어요”

그는 한국에 정착하기 전까지 2명의 누나와 아버지, 가정주부였던 어머니와 함께 쭉 벨기에에서 자랐다.

장씨는 여느 한국 입양인들이 겪었던 차별이나 냉대를 받지 않았다며 자신을 행운아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째진 눈을 갖고 유럽에서 사는 경우, 사람들은 특별한 관심을 갖습니다. 어떨 때는 착한 아이로 보지만 어떨 때는 조금은 매정한 사람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아요. 이러한 차이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저에게는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라는 점이 좋았어요. 하지만 저는 출생지의 언어, 식습관 또는 문화처럼 오히려 한국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을 모른다는 것이 신경 쓰였습니다”

밝고 활달한 그였지만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 자신이 알고 있던 입양에 대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땐 심적인 충격이 컷었다.

그는 “저는 지금까지 거짓말 속에서 살았습니다. 벨기에의 입양인 단체인 ‘Terre des Hommes’는 제가 서울에 있는 힐튼 호텔 앞에서 버려졌고 다른 정보는 없다고 했어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제가 버려졌다는 사실을 자꾸 상기시키는 것이 스스로를 힘들게 할 것 같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에 정착하려고 왔을 때 우연히 홀트아동복지회가 제 입양 단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홀트’에서 저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알게됐을 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다시 마음을 잡았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자신이 밀양사무소를 통해 부산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수양가족과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됐지만 그 외에는 친가족에 대한 단서를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국에 정착한지 7개월 째에 접어드는 장씨는 한국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만큼 적당한 일자리를 구하려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어 수업을 열심히 들으며 일자리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청년들도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들었어요. 저 역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리를 잡게 되면 나중에 고향인 밀양에도 자주 들리고 싶습니다”

장씨는 그저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친부모님을 만나고 싶지만 만약 친부모님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조용히 물러나겠다고도 말했다.

“저는 제가 어디서 왔고 과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1977년도 있었던 일과 그 이유를 듣고 싶어요. 저는 제 가족에게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같이 만나서 인생사를 이야기하는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만약 제 친부모님이 제 인터뷰를 보셨는데 만나기를 거절을 하신다면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문제를 일으키기는 싫어요. 저는 항상 행복하게 살았고 또한 이러한 행복한 삶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한국에 살고 싶고 제 과거를 조금이라도 되찾고 싶습니다”

곽동민기자 dmkwak@gnnews.co.kr



취재에 도움 주신분 해외입양인연대(GOA‘L) 백주연씨. 장하다 씨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은 아래로 연락 바랍니다.
(사)해외입양인연대(G.O.A.’L.)
G.O.A.‘L. 홈페이지 : www.goal.or.kr
전화번호 02-325-6585, 6522(담당자 백주연)



장하다_2 살
태어난지 2년만에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벨기에로 입양된 장하다씨. 장씨가 3살 무렵 벨기에로 입양되기 직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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