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만물과 화해하라
천지만물과 화해하라
  • 경남일보
  • 승인 201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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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 (한국농어촌공사 과장)
내 친구 중에 30년 넘게 김밥을 먹지 않는 특별난 위인이 있다. 수행의 일환으로 먹고 싶은 욕구를 참는다거나 먹고 나면 온몸에 두드러기와 같은 이상 현상이 일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친구가 김밥과 멀어지게 된 이유는 아주 작은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학창시절 수학 여행길 버스 속에서 먹은 김밥을 멀미로 고스란히 반납하면서부터 시작된 습관이다. 일종의 음식으로 인한 트라우마(trauma)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지 싶다.

우리는 몸에 있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또 그것들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 등을 첨가해 가공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가공된 정보들로 인해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사람들은 고통을 받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통의 원인은 가공된 현상들과 화해하지 못해서 생긴 화병(火病)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편안해지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들과 화해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모든 것들과 화해를 해야 하는 것일까?

첫째, 눈에 보이는 것들과 화해하라. ‘나는 저 사람 꼴도 보기 싫어.’ 아니면 ‘빨간색 꽃을 보면 재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괴로워지고 힘들어진다. 더 억울한 것은 내가 꼴 보기 싫어하는 주인공은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해 나 자신과 일방적인 화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여러 가지 소리들과 화해하라.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 사는 분들에게 새벽 2시의 기적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리와 화해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집에 놀러간 손님에게 기적소리는 단잠을 깨우는 소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싫어하는 냄새와 화해를 해야 한다. 내가 사는 동네는 시설원예 단지와 가까워 북풍이 불어오는 늦가을에는 거름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다. 이 거름냄새로 인해 송사까지 벌어졌다는 소문을 전해들은 적이 있는데 이 또한 화해를 하지 못해 생긴 불상사들이다. 넷째, 익숙하지 않은 맛과 화해하라. 얼마 전 김해공항에서 우연히 외국 여행을 떠나는 일행들의 가방을 엿보게 되었는데, 옷가지 몇 개와 김치, 된장, 고추장, 소주 등 온통 먹는 것으로 가득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우리와 다른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일진대 이 또한 음식과 화해를 하지 못해서 생기는 번거로움이다.

다섯째, 몸과 피부로 느끼는 감촉과 화해하라. 부드러운 비단 옷에 길들여진 피부는 광목천의 껄끄러움에 힘들어하고, 쌀밥의 부드러움에 밀려난 보리밥의 자리를 되찾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다섯 가지보다 더 중요한 감각기관이 있으니 그것을 생각 혹은 마음이라 부른다. 생각은 시공을 초월하여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미워하고, 들리지 않아도 싫어하고, 먹지 않았는데도 구토를 일으킨다. 그러니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을 제공하는 이 모든 것들과 화해를 해야 한다. 천지만물과 화해하고 나면 그 어느 곳에도 걸리지 않는 대 자유인이 될 것이다.

강신 (한국농어촌공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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