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나르는 남자
돌을 나르는 남자
  • 경남일보
  • 승인 2013.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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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내가 가끔 찾는 돌집이 있다. 이 돌집의 주인을 알게 된 것은 꽤 오래되었다. 선배 중에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흘러가는 계곡 옆에 황톳집을 지어 전원생활을 꿈꾸는 분이 있었는데, 여러 곳을 살펴보다가 작은 계곡가에 손수 황톳집을 지었다. 이 황톳집 상량보의 상량문을 적는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냥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산골에 사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선배가 힐링을 위해 터를 잡은 곳은 계곡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시내에 불과하였지만 깊은 골짜기가 품은 물을 조금씩 내보내는지 물이 마를 때가 없었다. 그는 이곳에 틈만 나면 가서 시내의 물길을 당겨 나무를 가꾸고 돌을 날라 황톳집을 짓기 시작했다. 말이 황톳집이지 거의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벽을 만들고 겉에다 황토를 바르는 식이었으니 돌집이나 다를 바 없었다. 시내에서 그곳을 오가며 그가 집을 짓는 것을 보며 간혹 집착이 아닐까 싶다가도 세월따라 완성되어 가는 그의 집을 바라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일정한 계획에 따라 단숨에 짓는 게 아니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조금씩 외벽을 쌓아 올렸다. 마치 세월이 집을 짓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가보면 한쪽 벽이 다 올라가 있고, 또 어느 날 가보면 다른 쪽 벽이 다 올라가 있는 식이었다.

마침내 돌을 날라 집을 짓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후 돌집의 외벽이 완성되고 난 후 상량보의 상량문을 적는 날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그 선배 옆에서 어떤 중늙은이가 상량문을 적다가 느린 몸을 일으켜 악수를 하는데, 그 얼굴이 그렇게 맑을 수 없었다. 온 얼굴이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상량문을 다 적고 난 후 함께 그의 집에 가 보았다. 그의 집은 산중턱에 있었다. 돌담에 기대어 동네 쪽을 바라보니 골짜기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의 집은 벽이고 마당이고 담이고 온통 돌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후 오로지 돌을 날라 흙집을 짓고 마당을 조성하고 담을 쌓는 일만 하였는지 집안이 온통 돌로 가득했다. 각종 돌을 깔고 돋우어 조성한 돌마당 사이사이 자라고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돌집과 집주인의 연륜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군데군데 돌에다 새긴 기도문이나 경구 속에 그가 담아낸 마음과 세월이 오롯이 흐르고 있었다. 한구석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용해 얕은 우물과 약수터를 조성해 놓았다. 주위 경관과 어우러져 그 물맛이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이곳에 들어와 돌을 나르면서 살았을까?

이곳의 주인장은 오래전에 죽을병에 걸려 삶을 마무리할 요량으로 이곳에 들어와 움막을 지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변의 돌을 집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우선 조그만 연못을 꾸미고 마당을 꾸미고 담을 쌓고 의자를 꾸미고 탁자를 꾸미면서 하루하루 손가락을 꼽았다. 기약도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마음속으로 기약했던 백일이 지났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언제부턴가 돌이 살아 움직이고 돌 속에 흐르는 피가 그의 몸을 돌아 다시 돌 속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세월도 바람처럼 흘러갔다. 그의 몸도 돌처럼 단단해졌다. 어느 순간 시간이 그가 만진 무수한 돌과 돌 사이의 고요에 갇혔는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세월을 잊어버렸다. 어느새 지난 세월과 아픔도 그의 고요한 미소 속에 용해되어 버렸다. 그리고 바람따라 한 여인도 이곳에 흘러와 그의 곁을 지키는 돌이 되었다. 이렇게 그와 생명을 나눈 돌들로 인해 황무지가 장미꽃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집 뜰에 지천으로 놓여 있는 돌들은 그냥 돌이 아니다.

나는 그제야 선배가 굳이 돌집을 고집하며 쉬엄쉬엄 집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힐링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돌을 날라 집을 짓는 것이 그에게는 나름의 힐링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그는 돌들과 생명을 나누며 살고 있다. 언젠가 그도 정말 돌이 될 것이다. 돌을 나르면서 정말 돌과 생명을 나누었는지 모를 일이다. 기적이다. 기적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갓바위 앞에서 빈다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돌이든 사람이든 서로 생명을 나눌 때 정말 예기치 않은 기적이 일어나는 법이다. 오랜만에 그 돌집에 다녀왔다. 돌집에 가면 마음이 편한 것도 피가 돌듯이 생명의 기가 돌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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