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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수 떨어진 가을 밟으며 계절 속을 걷다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77>수도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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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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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으로 오르는 암릉 길.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이 소의 뿔처럼생긴 양각산이다.
 
 
 
 
 
가을을 찾아 산으로 떠났다. 정작 산에는 가을이 없었다. 산기슭과 도시의 공원에는 사람과 단풍으로 형형색색 가을잔치가 한창인데 수도산 양각산 정상에는 이미 가을이 없었다. 단풍은 산 아래 먼발치에서 ‘우리 떠나가고 있다’며 손짓하고 있었다.

나뭇잎은 단풍으로 물들지 않고 가지에 붙은 채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한줄기 ‘휑∼’하고 불어 닥친 바람에 못 이겨 남은 나뭇잎을 ‘우수수’ 떨어트리고 있었다. 나무잎은 아주 짧은 시간 붉은 색채를 토악질하듯 뿜어내고 한순간에 땅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언제 저 나무 끝에 초록의 나뭇잎이 달려 있었을까. 길지 않았던 여름날의 초록빛이 벌써 추억처럼 아련하다. 이 계절 발끝에 채이는 것은 갈색 낙엽. 그렇게 나무는 한조각 미련도 남김없이 모두를 내어주고 닥쳐올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낙엽이 수북수북 쌓인 수도산 양각산 산상 길, 그 길을 따라 6시간동안의 낭만과 서정 넘치는 산행을 했다.

수도산은 1300m가 넘는 산이지만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지리적으로 함양 덕유산과 합천 가야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덕스러움’의 덕유산과 ‘석화성의 절정’ 가야산의 특징이 적절하게 혼재돼 있는 산으로 이 두개의 산을 연결하는 고리역할까지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대부분 관목류와 잡목이 주류를 이루는 육산이지만 정상부근에는 가야산의 바위처럼 암릉이 불쑥불쑥 튀어 오른 형상을 하고 있다.

일단 이런 암릉 구간을 제외하면 주릉은 양각산 시코봉 수도산까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산행의 진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 급한 경사도 없고, 내려꽂히는 길도 없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낙엽을 밟으며 걷는 재미가 일품이다.

▲수도산(修道山)은 경북 김천시 증산면과 대덕면, 거창군 가북면에 걸쳐 있다. 높이 1317m. 백두대간 민주지산 삼도봉 덕유산 영취산으로 이어지는 구간 중 우두령에서 갈라져 수도산 단지봉 가야산으로 내달리는 가야기맥 상에 있다. 수도산에서 갈라진 한줄기는 북동쪽으로 염속산 백마산 금오산으로 기맥을 형성한다. 먼 북동쪽으로는 강원도 매봉산에서 분기한 낙동정맥이 동해안 등뼈를 따라 부산 금정산까지 천리길의 맥을 잇는다. 과거 불령산으로 불렸다. 그래서 산기슭 청암사 일주문 편액은 ‘불령산 청암사’다. 청암사는 신라 헌강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뒤 1912년 화재로 소실 된 후 중건했다. 숙종의 비 인현왕후의 원당(願堂)이 있다. 수도암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307호), 삼층석탑(보물 제297호),약광전석불좌상(보물 제296호)이 있다.

▲산행은 거창군 가북면 심방마을→주능선→흰대미산·양각산 이정표→양각산 왼쪽봉→양각산(1150m)→시코봉(1237m)→신선봉→수도산(하산)→심방마을 갈림길→불석계곡→임도→수재→심방마을 원점회귀. 총 12km에 휴식시간 포함 6시간 30분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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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로 보이는 단풍

▲오전 9시, 심방마을회관 앞 ‘수도산까지 5.9km’이정표 옆으로 시멘트포장 길을 따라 마을 중앙을 관통해 오른다.

마을회관 옆 김병옥 강옥순 부부는 집 옆에 사과나무 과수단지를 끼고 있다. 붉은 사과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지만 일손이 달려 도회지에 사는 아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안길 통과 후 5분 만에 마을 끝에서 시멘트 길을 계속 따르지 않고 곧바로 희미한 능선길로 붙는다. 안내 리본이 필요한 구간이다.

가시덤불 억새 등 관목류와 낙엽송이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 전형적인 마을 뒷동산 분위기가 난다. 1300m급 산인데 이런 류의 나무들이 있는 것은 좀 특이하다.

낙엽송 숲에 밤나무가 낙엽송처럼 자라는 게 보인다. 본래 키가 크지 않은 밤나무가 낙엽송의 큰 키를 따라잡기 위해 자기 몸을 낙엽송처럼 길게 늘어뜨린 경우다.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갈라파고스 핀치가 선인장 가시덤불 속의 벌레를 쉽게 잡아먹기 위해 부리를 길게 키운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은 이를 자연선택설로 설명했다.

등산로에 천남성이 널브러져 있다. 한달 여 전 대구 팔공산에서 봤던 것은 초록 줄기가 성성했었는데 이곳의 천남성 열매는 더 붉어졌고 줄기는 노랗게 시들었다.

9시 48분, 억새지대를 지나 주릉에 올라선다. 심방마을에서 1.4km 올라온 구간이다. 곧이어 능선에 ‘왼쪽 흰대미산 900m, 오른쪽 양각산 1km’ 이정표가 나온다.

능선의 분위기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양쪽에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가을 단풍은 산 아래로 멀어지고 있다. 그저 발밑에는 갈잎 밟히는 소리가 서걱인다.

10시 50분, 출발 1시간 50분 만에 물고기 형상의 바위를 지나 양각산 왼쪽 봉에 닿는다. 이정표가 직진방향의 수도산 3.5km, 왼쪽의 어인마을 3.2km,를 가르킨다. 오른쪽은 심방마을 위 수재마을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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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물처럼 흐르는 불석계곡

양각산은 거창군 웅양면 산포리 지역이며 화강암으로 구성돼 있다. 옛 이름은 금광산이었다. 이 산과 주변에는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양각은 2개의 봉우리가 소뿔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른다. 소의 코라는 ‘시코봉’, 소머리와 같다는 ‘우두령’, 소의 물 먹는 그릇이라는 뜻의 ‘구수마을’, 소의 불알 ‘우랑이마을’, 소의 코에 해당하는 ‘우비천’이 있다.

양각산을 지나 암릉에 서면 가야 할 산마루금이 뚜렷하다. 벽바위 바로 뒤에 시코봉이 우뚝하고 마루금은 오른쪽으로 느리게 고도를 높여 수도산에 닿는다. 마루금을 따라 눈을 돌리면 더 멀게는 산의 기맥에 해당하는 합천 땅 가야산정이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얼핏 1993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향로’와 비슷하다. 가야의 땅에 백제 금동향로…, 그래도 그걸 닮았다.

몇 차례의 암릉과 능선이 이어지고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산 속에 이런 아름다운 길이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시코봉에 닿기 전 벽바위 부근에서 지나온 양각산을 뒤돌아보는 전망이 좋다. 화면 앞의 바위와 소나무, 그 뒤로 이어지는 선명한 두개의 뿔, 산 마루금은 너울너울 하늘 끝으로 향한다. 사진촬영의 포인트가 되는 지역이다.

11시 51분, 출발 2시간 50분 만에 소의 코를 의미하는 시코봉에 닿는다. 수도산 1.7km가 남은 구간이며 왼쪽으로 4.1km를 내려가면 우두령이 나온다.

시코봉을 내려선 뒤 다시 오름 짓. 전망대 삼각바위와 신선봉을 지나 정상을 향한 마지막 오름길이다. 오라는 이 없어도 조금이라도 빨리 오르고 싶은 조급한 마음은 꼭 이럴 때 생긴다.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12시 30분 수도산 정상. 정상석이 있고 그 옆에 높이 3m의 돌탑이 서 있다. 정상석은 지난 8월 말에 새로 세워졌다. 김천시에서는 황악산 대덕산과 함께 새 표지석을 설치했다. 높이 1.1m, 폭 0.8m짜리로 강가에서 채취한 하얀색 돌이며 앞면에 산 이름과 높이를, 뒷면에는 산의 유래와 전설을 새겼다. 정상석 뒷면에 ‘산 이름은 통일신라 말 859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한 고찰 수도암에서 비롯됐고 이와는 달리 부처님의 신성한 산이라는 뜻으로 불령산으로 불렸다’고 새겨져 있다.

정상조망은 여느 산이 부럽지 않다. 서쪽으로 덕유산, 남으로 황석산, 더 먼 남으로 지리산, 동으로 가야산이다.

하산 시작 직후 만나는 갈림길. 왼쪽으로 수도암·청암사와 오른쪽 가야기맥 방향 단지봉·가야산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취재팀은 단지봉으로 가다가 중간에서 불석계곡 쪽으로 하산 길을 잡았다.

하산 길 반대편에 있는 청암사에는 숙종의 비 인현왕후의 명복을 빌었던 사당이 있다. 그는 아이가 없는 약점으로 희빈 장씨와 속 끓는 경쟁을 하며 폐서인까지 되는 등 비운의 삶을 살았다. 한때 복권되기도 했으나 1701년 35세에 요절했다.

청암사 입구 바위에는 조선 마지막 여류시인 최송설당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가 청암사에서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란(蘭)’이라는 시문을 옮겨본다.

‘푸른 산에 단풍이 들어 충신이 떠나가면/ 오로지 초나라 난초생각 뿐/ 골짜기에 났다고 한탄하지 마라/ 맑은 향기는 멀리서도 느낄 수 있으니’

하산 길 오후 2시 30분, 산행 출발 후 5시간 30분 만에 불석계곡을 만난다. 낙엽이 떠다니는 계곡 물은 맑고 시린 청량수다.

계곡을 따라 내려 온 뒤 시멘트 포장된 임도에 올라서면 꿈결 같았던 산길, 사람의 길은 허무하게 끝난다. 포장임도를 걸어 오후 3시 30분에 심방마을에 닿았다.

최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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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 등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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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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