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봄엔 파릇한 대파를 맛보려나
내년 봄엔 파릇한 대파를 맛보려나
  • 경남일보
  • 승인 2013.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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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의 귀농일지> 대파심기
절기상으로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 엊그제 지나갔다. 가을걷이도 거의 끝나 비어버린 들판이지만 아직 곱게 물든 단풍이 남아 계절의 순환을 막고 섰다. 늦가을 햇살이 기울면 와 닫는 서늘한 기운에 묻어오는 국향이 가을정취를 더하고 있다.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다. 산야에 절로 피는 노란 산국과 감국의 향도 어지러운데 곳곳에서 국화축제가 한창이다. 국향이 어우러진 마당에는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장도 마련되기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축제는 농사와 관련이 깊고 늦가을에 열리는 축제는 우리 농산물로 만든 먹거리가 풍성한 축제가 대부분이다.

진주에서는 농식품박람회가 성대하게 열려 많은 관심을 끌었다. 같은 장소에서 국화축제와 토종종자박람회까지 열려 많은 사람들을 불러 들였다. 발 디딜 틈 없는 박람회장에는 농사뿐만 아니라 식품과 관련된 업체까지 앞 다투어 신제품을 들고 나와 홍보에 열을 올렸다. 잠시 일손을 놓고 나온 농민들도 농기계는 물론이고 새로운 농법을 소개하는 곳에서 넋을 놓기 일쑤였다. 오랜만에 보게 되는 토종종자 앞에서는 옛 추억에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접할 수 있는 첨단장비와 새로운 지식, 기발한 농법에 감동하고, 잊고 있었던 종자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예로부터 가을비 한 번에 옷이 한 벌이라고 했다. 봄비와 다르게 가을에 비가 내리고 나면 기온이 급감하며 추위를 느끼게 된다. 주말에 가을비가 촉촉이 내렸다. 그동안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라 김장채소를 비롯한 농작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비가 그치면 겨울 같은 추위가 한차례 닥칠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다. 추위가 닥치기 전에 미처 끝내지 못한 농작물 수확을 서둘러야 할 때다.

다음 주부터 기온이 급감하며 서리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를 듣고 단감 수확을 서둘렀다. 수확은 빨리 해야 된다는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감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이슬이 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가을이슬은 비가 내린 후처럼 물기를 한껏 머금고 있어 작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슬이 과일 표면에 묻으면 얼룩이 생겨 상품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슬이 어느 정도 사라져 햇살이 퍼지는 오전 10시 이후라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또한 급하게 단감을 따려 해도 아직 빛깔이 나지 않아 남겨 두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서리만 내리지 않고 영상의 기온이 어느 정도만 유지된다면 익은 과일만 따내고 더 남겨두면 빛깔도 나고 따라서 큰다. 단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과일은 나무에서 익혀서 따야 맛과 빛깔이 제대로 나지 설익어 따면 아무리 보관해도 모양과 빛깔이 바뀌지 않는다. 내일 추위가 닥쳐 얼려 버린다 해도 오늘 따지 못하는 이유가 상품성이 떨어져 인건비도 못 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한다.

과일농사를 적정 규모 이상 짓는 농가는 대부분 저온저장고를 가지고 있다. 수확기 홍수출하로 가격이 떨어질 때 판매를 하지 않고 저장했다가 서서히 나누어 출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영농규모가 적은 농가는 저장시설이 없어 수확과 동시에 판매를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여서 오전에 따 선별하여 박스에 담아 공판장에 보내고, 시간이 나면 늦게까지 수확 보관했다가 다음날 작업량과 보태서 출하하는 식이다.

남의 일손을 빌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장비도 시원찮아 늘 작업속도가 더디고 양도 많지 않다. 그것도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추위가 닥친다니 걱정이 앞선다. 주말에는 잘 익었느냐 안 익었느냐를 따질 것 없이 무조건 따고 봐야겠다. 우선 나무에서 따 상자에 담아 거적으로 덮어 놓으면 얼지 않고 며칠은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아내가 모종을 사다놓고 틈이 나지 않아 보관해 왔던 양파와 대파를 아버지께서 도와주셔서 심었다. 지난봄에는 비닐 멀칭을 하고 대파를 심었는데도 한 뿌리도 먹지 못했다. 다른 일이 바빠 밭을 돌보지 못한 사이 잡초가 웃자라 파를 덮어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심은 양파와 파는 월동을 한 후 내년 봄에 수확할 계획이라 잡초 때문에 수확을 포기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보관해 온 모종을 심었더니 어정쩡하게 모자라 더 사와 보식을 해야 했다. 주말에 내린 비를 맞고 뿌리를 내리면 내년에는 따로 대파와 양파를 구입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정찬효 시민기자

대파심기
초보농사꾼이 대파를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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