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겨울나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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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환 (경남은행 남진주지점장)
문고리를 손으로 잡으니 쩌~억 하고 소리를 내며 고사리 같은 여리디 여린 손은 쇠로 된 검은 문고리에 깊게도 달라붙는다. 노란 양푼이에 담아 머리맡에 놓아둔 자리끼는 밤새 꽁꽁 얼어 그 단단함을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부풀어 올라 정수리를 벌려 놓았다.

엄동설한의 매서운 밤바람을 긴긴밤 동안 전혀 느끼지 못하고 미동 없이 깊은 잠을 들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들어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출근길에 한기가 착 달라붙는 것을 느낀다. 지난주까지만 하여도 운전 중 창문을 닫으면 더위를 느꼈는데 그새 한기라니 하는 생각에 가만히 돌아보니 입동이 지나간 지도 며칠이 흘렀음을 안다.

그러고 보니 나만 무심하였지 주위는 온통 겨울을 맞이하고 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각종 기관단체와 민간기업에서는 소외된 계층과 지역에 연탄을 나르고 김장을 준비하는 등 분주하다, 그러나 그 예전에 비하면 이 정도의 분주함으로 어디 월동준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처마 밑에 무청을 빼곡히 매달고, 메주콩을 삶아 만든 메주는 아랫목에 가지런히 놓이고, 고구마는 커다란 마대자루에 담아 건넌방에 놓아두고, 문풍지가 새로이 발라지면 어린 마음에 그 문풍지만으로도 벌써 따뜻함을 느낀다.

이렇게 겨울나기 준비를 마치면 어린 우리들의 손에는 팽이와 썰매가 들려져 있다. 강과 실개천이 두껍게 얼어 붙고 매서운 산바람이 마을 어귀를 세차게 몰아쳐 짙은 어두움을 드리워도 우리는 어느 누구 하나 집으로 가지 않고 한데 어울리다 돌담 골목을 타고 귀가를 종용하는 어머니의 힘찬 목소리에 어슬렁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보내는 기나긴 겨울 동안 우리는 누구 하나 “춥다”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겨울이 예전과 같은 추위를 몰고 오지도, 그렇게 길지도 않을 뿐더러 방한·발열이 완벽한 옷가지와 다양한 난방기구가 즐비하고 야외활동이 현저히 줄어든 요즈음 오히려 다들 춥다고 야단법석이다. 그 어린 시절 함께 보낸 친구들과 만나거나 유선으로 안부를 전하면 하나 같이 “요즘 사는 게 왜이리 춥지”를 입에 달고 있다. 그렇다. 날씨가 추운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추워진 것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래들에게서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으니 겨울이 점점 더 추워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보다 정교하여진 기상청 예보에 의하면 올 겨울 추위는 이르기도 하지만 강하기도 하다니 걱정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사람의 온기를 전하는 겨울을 보냈으면 하는 소망이다.

차진환 (경남은행 남진주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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