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 (한국농어촌공사 의령지부 과장)
여고생인 그녀를 읍내 레코드가게에서 만나 대입 문제지를 물려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결혼은 물론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모른 채 친동생처럼 그냥저냥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느 여름날 책상위에 놓아둔 그녀의 사진을 본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 “누구냐?” “동생인데요.” “나는 그런 동생 만든 적 없는데?” “헐~~” 그때부터 아버지는 실업자 자격을 취득한 아들 장가보내기 작전을 비밀리에 진행시켰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도청 감청 수준은 아니지만 호적등본을 몰래 발급받아 가족들에 대한 탐문수사를 마치고, 나름 일가견이 있는 당신의 지식으로 사주팔자며 궁합도 맞춰본 후 드디어 본격적인 실행 작전을 펼치기 시작하셨다.
두루마기를 폼 나게 차려입은 아버지는 내 앞에 어머니의 닷 돈짜리 금비녀와 현금 75만원을 내어놓았다. 그 시절 금 한 돈의 시세가 5만 원 정도였으니 합하면 백만 원이 되는 셈이다. 그것을 문종이로 곱게 싸고 신문지로 다시 포장을 한 비자금을 내 손에 들려주면서 앞장을 서라고 하는 것이다. 장래 사돈과의 어색한 상견례에서 아버지는 “예전 같으면 결혼 전에 내외를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지만 개명(開明) 세상이니 격식은 생략하자.”는 일성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평소에도 말 수가 적은 장인어른이 뭐라고 의견을 내놓기도 전에 결혼날짜를 일방적으로 정해버리고, 친지는 말할 것도 없고 양가부모들 양말 한 짝도 서로 주고받지 말자는 선에서 협상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으로 가지고 간 자금을 처녀에게 건네주며 “그걸로 옷을 사든, 패물을 사든, 저금을 하든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남기고 협상테이블을 유유히 떠나버렸다. 덕분에 요즘 젊은이들처럼 화려한 청혼은 고사하고 결혼하자는 말 한마디 못해본 체 그해 어린이날이 겹친 연휴 첫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얼마 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결혼비용이 1인당 5천만원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단돈 백만 원으로 결혼한 나는 행운아라 할 것이다. 특히 사람 하나보고 실업자에게 첫딸을 내어준 고마운 장인어른, 지금은 보고 싶어도 계시지 않지만 요즘 인기 있는 유행어로 한 말씀 올리고 싶다. “장인어른, 주도면밀한 사돈의 결혼 작전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저도 갑자기 끌려가서 많이 놀랐습니다.”
강신 (한국농어촌공사 의령지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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