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민박과 ‘게스트 하우스’ 유감
한옥민박과 ‘게스트 하우스’ 유감
  • 경남일보
  • 승인 2013.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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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편안한 잠자리는 여행자들에게 피로를 풀게 해주고, 다음 여행을 여유롭게 준비하도록 해준다. 여행자들은 여독도 풀고 여행정보도 얻기 위해서 숙소를 찾지만 방문지 생활의 정취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전통 숙박업소를 찾는다. 현지생활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여행자일수록 그런 ‘머무름’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통 숙소를 찾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방문지의 전통이 있는 잠자리는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방문지에는 그곳의 전통이 숨 쉬는 잠자리가 있다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훌륭한 관광자원이라 할 수 있는 전통 숙박업소가 참으로 많다. 그런 예로 스페인의 ‘빠라도르’는 옛 성, 수도원, 성곽이 있는 건물을 개보수해서 관광객에게 제공한다. 물론 낡은 건물이다 보니 객실시설이나 욕실이 현대식 호텔을 따르지 못하지만 역사적인 장소와 해안가나 숲속의 자연환경이 어울려 많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중남미 지역의 햇빛에 말린 진흙으로 만든 ‘어도비’ 벽돌 건축물은 두꺼비집을 연상하는 불량한 현지민의 숙소였다. 하지만 우중충하기만 한 내부를 편안하고 친숙한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발전시켜 그 지역의 독특한 거주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굳이 먼 나라에서 예를 구하지 않더라도 ‘료칸(旅館)’은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 숙박시설로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다. ‘료칸’은 현대적인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많은 구조가 바뀌었지만 짚으로 만든 다다미가 있는 객실, 실내 탕이 있는 천연목재의 입욕시설, 연희를 즐기는 넓은 방과 일본식 정원을 간직한 매력 있는 전통숙소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한옥은 훌륭한 전통 숙박시설이라 할 수 있다. 한옥은 이전부터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마당과 연결된 툇마루에 걸터앉아 기와지붕의 고운 선을 즐길 수 있는 정취 있는 전통숙소로 알려져 왔다. ‘한류의 붐’을 타고 우리나라를 찾는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게스트 하우스’라는 팻말을 걸은 한옥들이 들어선 서울 북촌마을 인근지역은 전통 민박마을의 대명사가 됐다.

문제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개인 다가구 주택과 원룸, 고시텔까지 개조한 도시형 민박들이 ‘외국인 전용 게스트 하우스’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이후로는 한옥이 ‘한국의 전통 민박’이라는 등식은 사라졌다. 물론 도시형 민박은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저렴한 숙박시설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하지만 전통한옥과 도시형 민박이 뒤섞여 ‘게스트 하우스’라 부르면 문제가 생긴다. ‘게스트 하우스’는 손님을 모시는 집을 칭하는 이름일 뿐이지 우리만의 전통 있는 잠자리의 고유한 이름은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전통 민박 체험형 숙박 브랜드 구축을 위해 작년에 열린 ‘지트(Gite) 코리아’를 설립해 보자는 국회 정책토론회 소식은 더 많은 걱정을 하게 한다. 토론회의 취지는 프랑스의 앙증맞은 시골집인 ‘지트’를 관광객에게 제공해 성공한 ‘지트 드 프랑스 사업’을 우리나라에 도입해 보자는 발상이다. 하지만 프랑스 임대별장의 뉘앙스는 우리 한옥이나 전통고택이 풍기는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다. 그런 발상은 우리 스스로 우리 전통문화의 값어치를 얼마나 낮추어 깔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예라고 생각된다.

우리에게는 ‘한옥민박’이라는 이름이 있다

그런 숙박업소의 외국이름 짓기는 최근에 비롯된 문제도 ‘게스트 하우스’에 국한한 문제만도 아니다. 서구사회의 자동차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모터인 호텔’이 ‘모텔’로, 프랑스의 전통 농가민박인 ‘빵숑’이 ‘펜션’으로, 원래 젊은이들의 여행 편의를 위해 만든 저렴한 청소년 숙박시설인 ‘유스호스텔’이 집단수련원 시설형태의 ‘한국형 유스 호스텔’로 둔갑해 아무 생각도 없이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외국이름의 숙박시설들이 생겨난 것은 원래의 유래나 의미, 용도를 변질시켜 오로지 외국 브랜드 숭상의 이미지만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보자는 얕은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전통 민박을 알리기 위해서는 ‘한옥민박’이라는 고유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이 맞다. 제 이름은 귀하게 여길 줄 모르면서 남의 이름을 막 빌려다 쓰는 일은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올바른 대접이 아니지 않은가.

 

고원규 (객원논설위원·한국국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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