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밤나무 너도밤나무
나도 밤나무 너도밤나무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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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 (한국농어촌공사 의령지사 과장)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가슴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7080세대라면 한번쯤 흥얼거려봤을 노랫말이다. 나또한 많이 좋아하는 노래지만 정작 마로니에가 어떤 꽃인지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세월이 흘러 자원봉사를 나가는 진주시 금산면에 자리한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처음으로 마로니에라 불리는 나무를 만나게 되었다. 종교타운 주차장가에서 한여름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는 이 나무에는 호두를 닮은 열매가 열리는데 가을에 껍질을 벗겨보면 그 모양이 밤(栗)을 많이 닮았다. 밤톨은 세 개씩 든 관계로 삼각 김밥을 닮았지만 마로니에는 한 톨로 작은 공을 닮았다. 진한 갈색으로 반짝이는 잘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독성을 품고 있어 먹을 경우 급성 위통이나 위경련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간혹 밤으로 알고 잘못 먹은 사람들이 응급실로 실려 가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듣고 행여 훈련병들이 먹을까 염려되어 모임이 있을 때마다 주의를 환기시켰다.

마로니에는 나도밤나무과에 속하는 칠엽수의 서양이름이라고 한다. 우리 식물 이름에는 ‘너도’나 ‘나도’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들이 꽤 있다.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너도방동사니, 나도방동사니, 너도양지꽃, 나도양지꽃 등…. 여기엔 나름의 규칙이 있는데, ‘너도’가 붙으면 ‘나도’가 붙은 것에 비해 본래 식물에 가깝다고한다. 그러니까 너도밤나무는 나도밤나무보다 더 밤나무를 닮았다는 말이다. 너도밤나무는 “그래, 너 정도면 밤나무로 봐줄 만하다”고 남이 인정해 준 경우고, 나도밤나무는 비슷하지만 남이 보기엔 아닌데 스스로 밤나무라고 우기는 꼴이다. 식물의 유사성과 특징을 예리하게 관찰해 이름을 붙인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나도밤나무’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강원도 정선의 노추산 이성대에서 공부하던 율곡 선생에게 호랑이가 나타나 밤나무 천 그루를 심지 않으면 잡아먹겠다고 하는 바람에 그날부터 밤나무를 심었다. 며칠 후 호랑이가 밤나무를 세어보니 두 그루가 모자라 율곡선생이 호환을 당할 위기의 순간인데 나무 하나가 대뜸 “나도 밤나무요!”라고 소리쳤다. 호랑이가 그래도 한 그루가 모자란다고 하자 나도밤나무가 옆에 있던 나무를 보고 “너도 밤나무잖아!”라고 말해 호환을 피했다는 재미난 이야기다. 모양새로 ‘나도’니 ‘너도’니 구별하지 않고, 차림새 보고 있는 놈 없는 놈 구별하지 않으면서 세상사 걸림 없이 둥글둥글 살다보면 호환도 피해간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그러니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데 나도밤나무면 어떻고 너도밤나무면 어떠랴. 다툼은 너와 나를 구분하는 분별심에서 생겨난다고 하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둥글둥글 살아야겠다. “나도 밤나무~!”, “너도 밤나무~!”

강신 (한국농어촌공사 의령지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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