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공간과 유비쿼터스 기술은 닮은 꼴
노장공간과 유비쿼터스 기술은 닮은 꼴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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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인간에 있어서 공간은 비물체로서 사람이 만질 수 없고, 쏟아 버릴 수도 없으며, 구부리거나 구멍을 뚫을 수도 없다. 그러나 공간은 인식된다. 오로지 물체와 물체 사이에 있는 빈 곳에서 공간의 인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하니 시간과 마찬가지로 사유의 근원 또한 공간을 토대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적인 공간을 동양은 어찌 느끼고 살았을까. 동양의 일원론 및 노장사상을 보면, 우선 동양은 실재(有)와 비실재(無)를 하나로 결합했다. 형태와 공간과의 관계를 보자. 유형의 물건이 여기 있다. 공간이 없었다면 물건이 있을 수 있는가? 동양사회에서 진정 인정되는 것은 유형적인 부분을 존재케 하는 무(無) 즉, 공간이었다. 특히 노장사상에 있어서 공간은 정신적 영역과 물질적 영역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실재와 비실재를 하나의 개념으로 결합했다. 거기서 비실재는 재료의 형태적인 면에서 유형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본질적인 것이었다. 내부의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지각될 수 있는 유형적 물체보다 한층 더 본질적인 것이라 보았고, 더 나아가 공간은 우주만상의 근원을 도(道)에 두고 거기에서 모든 것이 파생되어 나온다는 것이 노장사상이었다.

너무나도 지당하고 자연스러운 노자의 공간개념이다. 동양사회는 노자와 함께 무형과 유형을 분리하지 않고 공존관계로 보았으며, 그럼에도 무는 유에 앞섰다. 시간적으로도 상호인과로서 무는 우주론적 복귀를 의미했다. 다시 말하면 노자의 우주론적 무는 절대 무로서, 현상계의 유형과 무형은 모두 다 절대 무에게로 복귀하게 된다. 조각의 경우를 보자. 조각가는 돌을 깎아내면서 형태를 만든다. 그때 이 형태는 형태이자 기존 돌의 공간을 비우는 일이 된다. 미켈란젤로는 이런 이유로 “나는 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돌을 깎는다”고 했다. 돌의 공간을 없애가면서 형상을 만든다는 뜻이다. 서구철학은 미켈란젤로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만이 거의 유일하게 공간은 형태를 만들고 형태는 공간에 의해서 드러난다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산업사회는 공간의 철학보다 형상의 철학을 강조했다. 시간도 그랬다. 현재 시간을 강조하면서 ‘결과야 어찌 되었든’ 하면서 시간의 철학을 무시한 성과주의적이고 지속 불가능한 효과에 매달려 왔었다. 사람이 사물을 이해하고자 할 때 다각도의 공간에서 이를 이해하고 사물에 형태를 주거나 옮기거나 감추거나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무형의 인간의식을 소중히 하지 못했다. 공간을 무시하니 자연스레 사물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시킨다. 오로지 보이는 곳의 보이는 사물만 강조하다가 빠져 버린 근대사회의 편집증이 바로 ‘실증주의(positivism)’ 아닌가. 보이는 것만 믿으라는 것이다. 세상은 거꾸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만들어졌음에도 말이다.

공간철학의 거부는 자기 존재의 거부다. 공간을 거부했던 근대사회 스스로 거부당하고 만 것이다. 유비쿼터스 사회이다. 무형적 존재에 가치를 두는 사회다. 눈에 보이는 사물과 기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능과 사물을 언제나 기다리고 준비하며 대응할 자세가 만들어진 기술이 바로 유비쿼터스이다. 프로그램도 그렇다. 인간이 상상하는 그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잠재 에너지를 담고 있다.

차세대 스마트폰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기능이 강화되어 유와 무의 공간을 지배할 것이다. 현재의 물리적 공간을 무시하고 상상의 공간으로 기술 자체가 퍼져 나가는 것이다. 직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아파트에 있는 보일러를 작동할 수 있고, 로봇청소기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씻어 나온 쌀과 정수기가 콤바인(combine)된 전자동밥솥으로 밥도 짓게 된다. 즉 물리적 공간과 사이버 공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4차 공간혁명 시대가 된다.

21세기의 인간은 유비쿼터스 기술을 통해서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동시에 사물의 형태를 이미 통제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한국의 지식인들이 서구의 형상지향적인 철학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서구의 기술은 이미 동양철학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유비쿼터스는 틀에 의해 규정화된 공간이 아니다. 공간을 지정하는 도(道)이다. 도를 어기고 규정된 서구의 틀에 들어간 당신들 잘못이다.
권일현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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