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가야 할 역사의 일부분" 상징적 의미 커
"지켜가야 할 역사의 일부분" 상징적 의미 커
  • 강민중/양철우
  • 승인 2013.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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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촉석루·영남루 국보환원 운동

진주성 촉석루

 
 
 
최근 도내에서는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의 국보 재환원 문제가 거세게 일고 있다.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는 전쟁과 화재 등으로 인해 파괴·소실됐다가 이후 여러차례 중건·재건·보수 됐다는 이유로 국보 지정에서 해제돼 촉석루는 문화재자료로, 영남루는 보물로 각각 지정돼 있다. 이에 반해 서울 숭례문(남대문)은 화재로 소실, 복구됐으나 국보에서 해제되지 않고 여전히 국보 1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역에서는 남대문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도 국보로 환원되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하고 있다.

■ 진주 촉석루

진주 촉석루는 고려 고종 28년 (1241년)에 건립됐으며 1948년에 국보 276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6·25 전쟁 때 비행기 폭격으로 파괴돼 원형이 소실됐다는 이유로 1956년 국보에서 해제됐다. 원형이 파괴됐다 다시 세워졌다는 이유였다. 이후 1983년 경남문화재자료(제8호)로 지정, 지금에 이르고 있다.

촉석루는 6·25 전쟁 때 폭격기에 의해 파괴됐다가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진주 방문시 진주시민들은 촉석루를 재건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를 계기로 국비를 지원받아 1959년 공사를 시작, 1960년에 복원됐다.

진주 촉석루 국보 재지정 움직임은 지난 6월 재점화됐다. 촉석루 국보환원 운동은 지난 2004년 진주문화원에서 추진한 바 있지만 중건 후 기간이 50년 이하여서 기준에 못미친다는 문화재청의 주장에 따라 포기한 바 있다. 그렇지만 10여년이 지난 현재 촉석루 중건 53년이 지났기 때문에 충분한 자격조건을 갖췄다는 주장이 제기도면서 지역에서는 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진주성 촉석루의 보물 국보지정과 관련 지난 8월 7일 오후 경남도 문화재심의 위원들이 촉석루, 서장대, 북장대 등 7개 등급조정 촉구 문화재를 대상으로 1차 현지답사를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촉석루 국보 재지정 당위성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옛 자료들이 공개됐다. 1910~1920년에 그려진 촉석루 설계도 일부와 촉석루 중건 당시 국무회의록 내용 등이 속속 공개됐다.

자료들을 공개한 추경화씨에 따르면 옛 설계도와 현재 촉석루를 비교해 보면 설계도와 같이 완공했고 다만 나무기둥이 돌기둥으로 바뀌었으나 크기와 모양이 같고 30개 기둥 역시 설계도 그대로 완공했다는 것. 중건당시 1957년 1월 19일자 제6회 국무회의록에는 ‘촉석루 보수(補修)관계보고’라고 적혀 있어 자료도 나왔다. 즉, 촉석루는 중건 혹은 재건이 아닌 보수됐기 때문에 국보로 환원되어야한다는 타당성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이처럼 지역에서 촉석루 국보 환원운동이 계속되자 지방정계는 물론 지역 국회의원들도 힘을 보태고 나섰다.

지난 25일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진주을)은 대정부 질문에서 촉석루의 국보지정과 문화재 등급 승급 및 예전 모습으로 복원하는 재건축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31일에는 김 의원은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서 “촉석루가 6·25때 소실 후 복원됐다는 이유로 문화재 등급 증 가장 낮은 ‘지방문화재자료’로 지정돼 촉석루의 가치에 부합할 수 있게 국보 지정노력이 필요하다”며 국보 환원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과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국보 재지정은 계속 검토해 나간다고 밝혀 촉석루 국보 재지정이 점차 탄력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는 옛 촉석루 대석이 보존돼 있으며, 중건 당시 일제강점기 때 그린 설계도 대로 완공한 점, 영남의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를 감안하면 국보로 환원되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 촉석루가 국보로 재지정 될 때까지 ‘촉석루 국보지정 진주시 범시민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밀양 영남루

■ 밀양 영남루

밀양 영남루 국보 환원 운동도 밀양지역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밀양시는 지난 7월께 밀양 영남루 국보 승격을 위한 학술조사와 용역을 진행 중이며, 오는 2014년 2월쯤 용역이 완료되면 문화재청에 국보 승격을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밀양 영남루는 지난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국보 제245호로 지정됐으나 지난 1962년 1월 10일 지금의 문화재보호법이 제정ㆍ공포되면서 보물 제147호로 재지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밀양 영남루는 본루 좌우에 부속 익루와 층층각을 거느린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누정건축으로 서울의 숭례문과 함께 1933년 보물로, 1948년에는 국보로 각각 지정됐으나 1962년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보물 제147호로 변경 지정됐다.

밀양 영남루는 신라 경덕왕(742~765)때 신라시대의 이름난 사찰 중의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으로 창건돼 조선시대에 들어와 1460년(세조 6)에 중수하면서 규모가 크게 넓혔졌으며, 선조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37년(인조 15) 다시 지었고, 마지막으로 1844년(헌종 10) 불에 탔던 것을 다시 재건했다. 진주 촉석루(고려 고종 28년·1241)와 숭례문(태조 7년·1398)보다 훨씬 앞선 전통 누각이다. 특히 영남루와 주변의 산수경관이 수려해 1931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16경(景)을 정할 때 그 중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남루의 특징은 본루가 정면 5칸, 측면 4칸의 큰 규모로 넓고 높은 기둥을 사용한 누각의 큰 웅장함이 기품이다. 영남루는 가운데 있는 본루를 기점으로 좌측에 능파각, 우측에 여수각과 침류각을 배치한 형태로 이같이 본루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익랑을 거느린 누각은 영남루가 유일하다.

특히 중앙의 본루와 침류각 사이에는 계단형 통로인 여수각이 놓여 바닥높이가 다른 침류각과 본루를 사이로 연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여러 단의 높고 낮은 지붕이 변화 있게 구성된 여수각은 영남루의 건물배치와 형태구성에서 특징적인 요소로 영남루에 동적 변화와 파격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 같은 영남루의 독특한 형태는 다른 누각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건물배치와 형태에 보이는 창의적이고 독특한 특징으로 인해 영남루는 조선 후기 누각 건축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대 건축학과 이호열 교수는 “현재 남한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누각 중 영남루만큼 건축적으로 완결되고 건축미적으로 뛰어난 누각은 없다”며 “그동안 학술적·문화재적 가치와 저평가된 영남루 관련자료를 면밀히 조사해 이를 토대로 국보로 승격시키는 일은 밀양 시민들이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업”이라고 말했다.

밀양문화관광연구소 장병수 소장은 “여러 가지를 비교해볼 때 당시 1962년까지 14년 간 국보의 지위를 유지했으며 영남 제일루로 명성을 떨쳤던 영남루에 대한 국보 복원운동의 당위성은 충분하다”며 “이제부터라도 관련단체와 민간이 함께 가칭 ‘영남루 국보환원 추진위’를 구성하고 서명운동 등 적극적인 시민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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