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마을마다 홍시처럼 익은 인심
깊어지는 마을마다 홍시처럼 익은 인심
  • 경남일보
  • 승인 2013.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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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짚은 골' 찾아들며

'짚은 골' 들어가는 길.

 
 
 
이른 아침 하얗게 서리를 맞은 늦가을은 화려했던 가설무대를 뒷정리하고 떠난 자리만큼이나 허전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황량함을 더하는데 아트막한 산자락엔 아직도 떠나야 할 가을을 차마 보내지 못하고 마지막 단풍의 애잔한 자태가 어딘지 모르게 안쓰러운 겨울의 초입이다. 이맘때쯤이면 시골은 겨울채비를 하느라 그저 눈코 뜰 새가 없이 제 각기 바쁘고, 일터이던 어디든 이른 아침 집 나서는 도시인들은 나날이 뚝뚝 떨어지는 기온에 움츠려지는데  인정머리 없이 세월의 속도는 왜 이리도 빠른지 월말과 연말이 겹이 되어 밀려오니 마음까지 바빠져서 정신없이 허둥대게 만든다. 그러다 깜빡 옛 생각에 젖어들면 까치밥만 남기고 곱게 물들었던 단풍잎을 다 지운 감나무 아래의 작은 시골집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몽개몽개 피어나는 산촌마을의 풍경이 그림같이 황홀하여 향수에 젖게 한다. 그러나 어디 시골풍경이 액자 속의 그림 같이 평화롭기만 하겠는가? 눈비 올까 걷어오고 얼음 얼까 뽑아오고 콩 타작에 우케말림 해 저물까 서둘러도 돌아서면 별이 뜬다. 이토록 바쁘고 고단한 일상들이 그림 같은 풍광의 뒷면에서 언제나 버겁게 있어왔기에, 짠하게 마음에 쓰여서 두메산골을 찾아 풍광에 감춰진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볼까하고 길을 나섰다.

진주서 하동을 잇는 2번 국도는 전형적인 시골길이라서 사시사철 정감어린 길이다. 내동면을 지나면서부터 산과 산이 나지막하게 손을 맞잡은 틈새를 따라서 경전선철도가 완사역과 다솔사 간이역 그리고 북천역으로 이어지는 기찻길이 추억 속의 그림 같이 정겨운 길이다. 언제나 한적하고 고즈넉한 철길은 햇볕에 반짝거리며 이름 모를 야트막한 산모롱이 틈새로 숨어버리는데 지금도 간간이 기적을 울리면서 기차는 추억속의 여행길을 달리고 있어서 보내야 할 사람도 반겨야 할 사람도 없건만 괜스레 플랫폼에 서보고 싶어서 북천역을 찾아들었다.
깔끔한 작은 역사는 옛날 그대로인데 오가는 사람이 없어 플랫폼에 홀로 서니 옛 추억만 젖어온다. 검정교복에 학모를 쓴 남학생이며 하얀 칼라의 단발머리 여학생이며 인근 5일장을 찾아 커다란 보퉁이를 이고지고 기차를 놓칠세라 달려오던 아낙들, 보내는 이도 떠나는 이도 돌아서서 눈물짓던 그 사람들은 지금쯤은 어디만큼 가고나 있을까! 온갖 상념의 옛 추억 속을 헤매고 있는데 '뽜-앙! 뽜-앙!' 하며 디젤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며 힘차게 달려와서 플랫폼에 멈췄건만 정작 오르고 내리는 사람이 없어 쓸쓸히 떠나면서도 그래도 힘찬 기적을 또 한 번 울리고 멀리 사라져 간다.
 

추억 속의 상념을 떨쳐내고 2번 국도를 굽이굽이 따라 돌아 횡천삼거리에 닿으니까 '청학동 삼성궁' 이라 쓰인 황토색 안내판이 길마중을 나와 섰다. 여기서부터 1003지방도로는 청암과 묵계를 거쳐 청학동을 지나 삼신봉터널을 빠져나가면 지리산 중산리로 연결되는 2차선 도로이다. 길은 산기슭을 밟으며 횡천강을 끼고 구불거리며 오르는데 먼 산 높은 봉우리는 벌써 겨울채비로 잿빛으로 물들었다.

청암면사무소에 다다르자 경천묘와 금난사를 알리는 황토색 안내판이 다소곳이 나와 섰다. 발길 닿는 대로 바람 잡고 나선 길손이 뭐가 바빠서 지나치랴. 청암복지회관을 돌아드니 높다란 홍살문이 하늘 높이 우뚝 섰고 홍살문 안으로는 솟을삼문이 높이 섰다. 널따란 경내에는 고래등 같은 목조건물이 즐비한데 경천묘는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곳이고 금난사는 고려삼은 중인 목은 이색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안내판이 일러준다. 또 하나의 안쪽을 막아선 솟을삼문은 커다란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고 참배객을 위한 전화번호가 담장 앞에 적혀 있으나 늦가을 바쁜 일손을 어찌 부르랴. 천년사직을 망쳐버린 비통을 고스란히 짊어지신 경순왕의 심정이야 오죽이나 하려나. 훗날 다시 찾아 경배하고 정녕 나라를 위한 길을 여쭙고 싶으며 목은을 찾아뵙고 집집마다 학사 석사 한집건너 박사인데 올곧은 스승은 어디에 몸을 사렸는지 이 땅의 젊은이들이 갈 곳 몰라 헤매는데 어찌하면 좋으리까 하고 여쭙고 싶어진다. 훗날 여럿이 함께 와서 경배키로 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거슬러서 오르던 길은 하동호의 제방이 태산처럼 막아서서 길은 급경사로 굽이지고 가로수의 단풍나무는 아직도 제 빛깔을 뽐내며 줄지어 섰는데 가을 가뭄으로 하동호의 수위는 절반으로 내려앉아 널따란 호수의 가장자리는 허옇게 속살을 들어냈다.

호수가장자리로 이어지는 길은 굽이굽이 휘돌아져 잿빛으로 물든 먼 산 준령으로 꼬리를 감추는데 모롱이를 채 한 굽이나 돌았을까 싶은데 '심답'과 '짚은 골'이라는 표지판이 갈림길에 서있다. 아무래도 깊을 심자에 논답자를 써서 깊은 골에 논이 있다는 마을인가보다 하고 지나칠 수가 없어 심답마을을 찾아 좌회전을 하여 산길로 접어들었다. 비탈마다 여기저기에 현대식의 작은 가옥이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있어 호젓한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예가 끝인가 싶으면 또 한 모롱이가 나오는 2차선도로는 한참을 가다가 1차선으로 좁아지더니 발끝 아래는 계곡물 소리가 더욱 카랑카랑하게 울려오는데 길은 중이천 계곡을 따라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져 갔다.

야트막한 언덕마루에 커다란 자연석 바윗돌을 세워서 '심답마을'이라고 크게 음각이 되어 있는 길 양 옆으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목장승이 길마중을 나와 섰다. 필자는 이렇게 경건하고 이토록 청초한 모습으로 정중하게 반기는 목장승은 처음 보았다. 차에서 얼른 내려서 마주 섰다. 헌칠한 선비는 경건한 자태로 정중함이 넘쳐나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쪽을 찐 여인은 정숙함이 그윽한데 다소곳이 반기는 모습이 너무나 고마워서 이쪽저쪽 마주보고 깊숙하게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맞절을 했다. 목공예 예술의 극치인데 혹여 양산군자가 탐을 내면 어쩌나 하고 염려하며 언덕배기를 넘어서자 멀리 두세 집의 마을이 보였다.

논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어디에도 없는데 태극기와 새마을기가 드높게 휘날리는 심답경로회관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흔적이 없다. 효자정려비각을 사이에 둔 갈림길을 돌아 외딴집을 찾았더니 대봉감을 바라바리 따다가 선별을 하시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곶감을 깎느라 사람들은 골골이 흩어진 외딴집으로 다들 들어갔다며 홍시를 자꾸만 골라주시며 더 많이 먹고 해가 저물면 자고 가란다. 여기가 '짚은 골' 이라며 안으로 들어가면 '안골'이 있고 '논골'이 있고 또 '쳇바꾸미'가 있다는데 간신히 새겨들을 수 있었다. '짚은 골'은 '깊은 골'의 경상도식 발음이고 '쳇바꾸미'가 궁금하여 길을 재촉했다. 다시 이 길을 돌아 나올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걱정되는 외진 길은 기암괴석 어우러진 청류계곡을 끼고 첩첩산중으로 깊어지는데 골짜기마다 양지쪽 계곡엔 천연의 비색인 개옻나무단풍의 진한빛깔이 황홀경을 이룬다.

앵돌아진 모롱이를 한참씩 오르기를 거듭하자 네댓 집이 동그랗게 자리를 잡고 있어 예가 가루를 치거나 막걸리를 걸러내는 동그란 생활도구인 '체'를 닮았다는 '쳇바꾸미가 맞다'고 노인께서 답을 해 주시며 석계암은 더 가야 된다면서 홍시 하나 먹고 가라고 한사코 붙잡았다.

안 먹어도 부른 밴데 사양도 소용없어 한 발이나 더나온 배를 안고 한참을 또 오르자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기다란 두 건물은 절집 같지 않아서 다시 한 모롱이를 더 돌아들자 얼면 못 쓴다고 풋고추를 따고 있던 젊은 스님이 정중하게 반겼다. 움막 같은 작은 집이 요사채이고 한참 위로 법당이 있다하여 언덕으로 오르자 초파일에 달았을 성 싶은 여남은 개의 등이 처마 밑 매달려 벽면을 가득 메운 더 작은 집엔 볕살이 드는 출입문 쪽으로는 이제 막 깎은 곶감이 빼곡히도 매달렸다.

법당이 두 평 정도나 되냐니까 세 평 두 홉이라고 힘주어 자랑한다. 아방궁인지 궁궐인지 분간조차 어려운 요즘의 절집과는 달리 이름 없는 절집이, 물욕의 저편에 계신 부처님의 본뜻이라 싶어 고마움을 다하여 합장하고 일어서니 법당 앞으로 커다란 돌 거북은 칠성봉 산기슭에 묻혔다가 반 쯤 빠져나오는데 첩첩산중 고산준봉은 흰 구름 한가로운 중천에 높이 솟아 장엄하기 그지없다. /시민기자
 

절집 처마에 곶감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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