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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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의 부활 신화를 쓴 루이 거스너
IBM은 컴퓨터 산업을 배태시킨 장본인이며 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1위의 IT 회사였다. 현재 IT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CPU와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IBM의 하청 업체였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커지자 IBM은 마이크로소프트와 OS/2란 운영체제를 공동 개발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 계약이 깨지자 OS/2를 개발하면서 얻은 기술을 응용해 ‘윈도우’를 만들어 OS 시장을 장악했다. 이로 인해 IBM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승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 판결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약적인 발전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되었고 IBM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 IBM은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게 된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OS와 소프트웨어로는 도저히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길 수 없게 되자 개발자 커뮤니티를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IBM은 리눅스의 최대 지원자로 나서기를 자청했다. 금전적인 지원뿐 아니라 그들이 가진 최고급 서버에 리눅스를 공식 지원함으로써 리눅스를 세계적인 OS로 성공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편 IBM은 그 동안 변방에 머물러 있던 자바를 인터넷 세상의 핵심 언어로 만들었다. 오늘날 IBM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PC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빼앗겼지만 그보다 더 큰 시장인 기업용 서버 시장의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 그들의 대형 컴퓨터와 그들이 지원하고 있는 소프트웨어는 정부, 금융, 대기업에서 주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빼 놓고 생각 할 수 없는 핵심기술이 되었다.

IBM의 변천 과정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시기는 IBM의 창업자인 토마스 왓슨과 그 아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왓슨은 미국의 모든 사무실에 사무자동화 기기를 도입하는 데 크게 기여하면서 컴퓨터 업계의 절대 강자가 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네 명의 IBM CEO들이 동종 업계의 극심한 경쟁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IBM이 그간 누려왔던 세계 최고 첨단기업이라는 독보적 지위가 흔들리다가 추락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세 번째 시기는 IBM 80여년 역사상 최초로 외부 인사를 CEO로 영입한 1993년부터 시작된다. 그 주인공이 바로 루이 거스너(Louis V. Gerstner Jr.)였다.

지난 93년 ‘이제 IBM은 끝났다’는 언론계의 전망이 줄을 이었다. 160억 달러에 달하는 3년간의 누적적자로 인해 컴퓨터 시장의 ‘거대 공룡’ IBM이 벼랑 끝에 서게 된 것이다. 거대 공룡 IBM은 그동안 덩치 덕분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지만 일단 한번 뒤뚱거리기 시작하자 그 몸매를 스스로 가누기가 힘든 처지에 이르고 만 것이다. 세계 최고의 첨단기업이라는 독보적 지위를 누려온 IBM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순간에 구원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런데 그 구원투수는 첨단 기술업계에서 일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과자와 신용카드를 팔던 이단아, 루이 거스너였다. 그래서 IBM이 루이 거스너를 CEO로 지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조소와 우려의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예상을 뒤엎고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빈사 직전의 IBM을 회생시켜냈다. 거스너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IBM방식과는 전혀 다른 경영방식을 적용시켰다. 한번 고용되면 영원한 IBM맨이라는 종신고용제를 철폐하면서 전체 임직원의 4분의 1을 해고하는가 하면, 생산설비의 40%를 축소시켰다. 특히 그는 기존 IBM의 기업문화에 젖어 있던 구태의연한 임원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동시에 3만5000명의 근로자들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해고했다. 이러한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하여 ‘거대 공룡’ IBM이 서서히 부활하기 시작했다.

‘루이 거스너 통치 10년’을 거친 IBM의 성적표를 살펴보면 직원 수는 과거에 비해 오히려 7만1000명이 늘어났다. 또 40달러 근처에서 맴돌던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해 173달러로 치솟았으며, 시가 총액이 1690억 달러에 이르렀다. 거스너의 일방통행적이고 강압적인 경영 방식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IBM직원들은 거스너가 부임한 이후로 회사분위기가 전성기만 못하지만 부임 이전에 비하면 매우 좋아졌다는 평가를 하였다. 1977년에는 컴팩이나 휴렛패커드보다 뒤졌다. 그러나 1988년 포춘지에 ‘가장 존경받는 10대 기업’에는 선정되지 못했으나 컴퓨터와 사무장비 업종에서는 당당히 1위 자리를 회복하였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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