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직관'의 연약함을 논하다
'도덕적 직관'의 연약함을 논하다
  • 연합뉴스
  • 승인 201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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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방 오지앙 '딜레마' 번역 출간
  육교 위에서 전차가 아래쪽 선로를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것을 본다고 상상해보자.

 그런데 전차가 달려가는 방향의 선로에는 직원 다섯 명이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은 뭔가 문제가 생겼고 전차가 멈추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선로에 무거운 물건을 던지면 전차가 멈추리라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전차를 충분히 멈출 만한 뚱뚱한 남자 한 명이 당신 옆에 있다. 그 남자가 난간 위로 몸을 숙인다.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지나가는 전차를 구경하고 있다. 당신이 살짝 밀기만 하면 그는 선로 위로 떨어질 것이다. 이때 이 남자를 미는 일이 허용될 수 있을까?

 뚱뚱한 사람을 밀면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도 대부분 사람은 폭주하는 전차를 멈추려고 뚱뚱한 남자를 선로 위로 미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고 답할 것이다.

 뚱뚱한 남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는 도덕관에도 어긋난다.

 그런데 만약 그 뚱뚱한 사람이 야만적인 대량 학살의 주인공이라면? 선로 위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한 명의 직원이 당신의 친구나 가족이라면? 또는 노년의 뚱뚱한 사람에 비해 생명을 위협받는 사람이 매우 젊다면?

 신간 ‘딜레마’는 제목 그대로 도덕적으로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가설적 상황을 설정하고 독자들에게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책이다.

 저자인 뤼방 오지앙(Ruwen Ogien) 프랑스 국립 과학연구소 연구국장은 이러한 가설적 상황을 ‘사고실험’이라고 명명한다. 이 책에는 총 19가지의 ‘사고실험’이 등장해 독자들로 하여금 까다로운 도덕적 사고와 대면하게 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현실에서 존재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상황을 그려 궁지에 빠뜨린다고 푸념할지 모른다. 실제로도 오지앙이 설계한 가설적 상황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입장이나 정답은 없다.

 이는 각각의 허구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의 답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고실험의 논쟁과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함으로써 철학적 사고방식에 눈뜨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선천적 도덕성에 대한 우리의 확신에 도전한다. 흔히 우리는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한 ‘도덕적 직관’을 타고난다고 믿는다.

 그러나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줄기세포, 장기이식, 인권과 동물 생명권, 패륜 등 도덕적 직관의 견고함이나 보편성을 의심하게 하는 사례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의무’와 ‘원칙론’ 등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도덕과 윤리를 논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례와 실험으로 가득한 이 책은 새로운 방식으로 도덕과 윤리에 눈뜨게 한다.

 “이 책의 목적은 소박하다. ‘존엄성’ ‘덕성’ ‘의무’ 같은 무게 있는 용어들이나 ‘사람을 단순한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유의 거창한 원칙에 주눅이 들지 않고 도덕 논쟁에 참여하게 해주는, 일종의 지적 도구상자인 흥미로운 자료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윤리학의 반(反)개론서 혹은 도덕주의에 맞서는 지적인 방어에 관한 짧은 강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6쪽)

 프랑스에서는 2011년 출간됐다. 전문 번역가인 최정수 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다산초당. 332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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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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