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와 도스토예프스키
안톤 체호프와 도스토예프스키
  • 경남일보
  • 승인 2013.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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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얼마 전 필자는 과학저널에 발표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접한 적이 있다. 그것은 어떤 글을 읽는 것이 지적 능력과 감성 능력, 주변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발달시키는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였다. 미국 심리학자들이 내놓은 이번 연구결과는 어떤 글과 작품을 읽느냐에 따라 독자들의 지능·감성·사회관계 발달 정도가 다르다는 내용이다. 연구진은 다양한 독자를 대상으로 한 그룹에는 안톤 체호프와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고전을 읽게 한 반면에 다른 그룹에는 최신 베스트셀러를 읽어 보게 한 후 어떤 사람의 얼굴 표정을 담은 사진을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표출하고 있는지, 그리고 특정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등을 예측하도록 하는 5개 테스트를 받도록 한 결과 고전을 읽은 그룹의 점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도스토예프스키나 안톤 체호프의 소설들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문학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소설적 구성과 전개가 작가의 통제 하에 일정하게 진행되는 유명 베스트셀러와는 달리 훨씬 다양하고 다각적이다. 그만큼 입체적이다. 실제와 유사한 작중 현실 속에서 다양한 등장인물의 심리와 반응에 따라 인물들의 관계가 교차하고, 이러한 인물들 사이의 관계의 특성에 따라 전개되는 다양성을 띠고 있어 그만큼 개연성이 있고 실제적이다. 사건 전개는 다양한 곡선의 접점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독자는 매순간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입시환경의 변화에 따라 교과서 이외의 독서를 학습의 중요한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 당연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처에 필독서와 권장도서 추천도 넘쳐나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모르겠지만 각 대학과 도서관에서 발표하는 청소년 권장도서만으로도 청소년들은 이미 선택의 혼돈에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권장도서 추천은 도처에 난무하는데 학생들은 권장도서에서 도망치기 바쁘다. 의무적인 독서가 아니라면 학생들은 거의 권장도서를 잘 읽지 않는다. 여기에 도서관과 지자체와 독서 관련단체에서 주관하는 독서프로그램과 독서 행사도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하다. 심지어 출판사까지 가세해 자기네 책들의 홍보와 흥행을 위해 독서 관련 행사를 주관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러 단체에서 독서에 관심을 가지고 독서 분위기 진작에 힘을 보태는 일은 일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과 행사는 난무하는데 청소년들은 정작 읽어야 할 책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곳곳에 난무하는 독서행사와 프로그램이 정작 어떤 책을 어떻게 읽힐 것인가 하는 고민보다도 행사성을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내면적 소통과 변화를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독서 분위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프로그램도 필요하고 행사도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대중문화 행사처럼 이벤트성에 그쳐서는 큰 효과를 거두기가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에 빠져 허상을 실상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스마트폰 앱이 제공하는 허상에 비해 독서는 너무 지루하다. 그러나 이럴수록 청소년기의 독서는 청소년의 지적 능력과 감성 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발달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행사 위주의 독서 프로그램보다는 어떤 책을 어떤 과정을 통해 내면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와 고민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감대와 고민이 없는, 방향성을 상실한 독서는 그렇지 않아도 허상을 실상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을 더욱 허상에 집착하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쩌면 스마트폰이 스마트하면 스마트할수록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청소년들은 더욱 허상의 그림자 속에서 지적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꿈과 상상력을 점점 상실할지도 모른다. 고전 독서를 통해 조금이라도 인문학적인 상상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과 같은 스마트폰 시대에 오히려 엄선한 고전에 집중하는 실질적인 독서 프로그램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독서가 구체적 상황과 심리, 인물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와 전개를 유추함으로써 학습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앞의 실상’을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사회적 관계성 인식에도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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