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오면
12월이 오면
  • 경남일보
  • 승인 2013.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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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 교장, 신지식인)
1년 중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12월은 1년 중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달이다. 1월 달에는 새해를 맞이하여 1년을 설계한다. 그러다가 세월을 잊고 살다가 또 세월이 흘러 12월이 되면 ‘신년 달력 첫 장을 찢어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왔다’고 회고한다. 또한 사람들은 12월이 되면 다사다난했던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난 1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다고 느낀다.

1년을 마무리하는 12월이 오면 거리의 풍경도 여느 때와 다르다. 먼저 크리스마스 트리가 거리를 장식하고 울긋불긋한 야광불빛은 거리를 밝혀준다. 그리고 구세군 자선냄비가 종을 울린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야광불빛이 외형적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면 구세군 자선냄비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을 주기에 더 아름다워 보인다.

구세군 자선냄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였다. 그해 성탄절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서 배 한 척이 침몰해 1000여명의 생존자가 거리에 나앉은 상태였는데, 당시 구세군 사관 조지프 맥피는 이들을 도울 방법으로 오클랜드 부두로 나아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에 다리를 붙여 거리에 내걸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다.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웃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웃을 돕기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던 한 사관의 깊은 마음이 오늘날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실시하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오늘날 모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우리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모든 이들에게 이웃사랑의 절실한 필요성을 되살려 주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조셉바아)이 서울 명동에서 첫 종을 울려 매년 지속적으로 12월이 오면 변함없이 울리고 있다. 비단 자선냄비뿐만 아니고 세계 선진국들의 기부(donation)문화를 보면 매우 적극적이다. 호주에서의 기부는 단순한 개인의 선행이나 자선의 개념이 아니다. 기부는 합리적인 경제행위이자 사회적 투자라는 인식이 호주 기부문화의 핵심이다. 영국에서 기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다. 영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자선활동의 중요성을 배운다. 영국 학교들은 학생, 학부모들과 함께 자선음악회, 자선바자회 등 1년에 여러 차례 기부 관련 행사를 열어 기부문화의 틀을 형성해 나간다. 이렇게 영국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기부문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캐나다는 자원봉사자의 나라, 성숙한 기부문화를 지닌 나라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기부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자선단체 및 비영리기구에 기부한 캐나다인은 15세 이상 인구의 84%라는 놀라운 수치를 보였다. 독일인도 정기적으로 공익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인구의 1/4이며 1년에 5회 이상 자선 기부금을 내는 가구의 비율도 절반이나 된다. 미국에선 최근 기부 서약 붐이 일어나고 있는데,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내 보유주식의 1%를 넘게 쓴다고 해도 내 삶의 질이 향상되거나 더 행복해지지 않지만 내 재산의 99%를 사회에 돌려준다면 다른 사람의 건강과 행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빌 게이츠와 함께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우리는 12월이 오면 기부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반면 세계 선진국들의 기부문화는 사시사철 일상화·생활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 삶의 최종 목표는 봉사다. 그러한 봉사는 12월이 오면 적극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평소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12월이 왔다. 이혜인 수녀님의 ‘12월의 시’ 첫 구절을 기억하면서 용기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또 한 해가 간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 교장, 신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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