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불빛이 되어
따뜻한 불빛이 되어
  • 경남일보
  • 승인 2013.12.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붉게 물든 나뭇잎이 떨어져 내린 길에는 마치 아직 마르지 않은 핏자국처럼 선연하고, 찬바람에 굴러가는 낙엽처럼 떠도는 마음인 듯 이런 때에는 어느 누군들 어찌 고독하지 않으랴. 사람에 따라 마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생각과 표현이 다를 뿐이지, 이유 없는 슬픔, 자신도 모를 우울은 누구에게나 그 가슴 어느 갈피에선 문득 쓸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 번도 신을 의지해 본 적이 없다하더라도 겨울이 시작되는 문턱에 와서는 한 번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도록 참담한 자신을 느낄 것이며, 어쩌면 초라하고 고독한 자기 모습과도 대면하게 되리라.

계절의 변화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체험시켜 줌으로서. 겨울이 시작되는 길목에서는 누구나 철이 들 수밖에 없다. 이별을 겪고 나서야 말수가 줄어들고, 웃고 떠들 때와 장소를 분별하게 되듯이, 이별을 겪고 나서야 눈길이 깊어지고 마음도 깊어져서, 설익은 자신감과 흑백의 논리가 분명해짐을 느끼게 되는 것. 그래서 모든 삶에 있어 신중하고 그윽하고, 그 누구의 말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중심이 생기기 때문에 겨울의 문턱에서는 모두가 이런 추운 고독에서도 성숙되어 가는 것 아니랴.

그 풍요롭던 초목이 속수무책인양 앙상한 뼈대만을 드러내어 보일지라도, 그 부끄러움, 그 수치를, 그 초라함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안쓰럽게 느껴질 만큼 계절의 변화에 우리 자신도 순응하며 깨우치고 성숙되어 가는 것일진대,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생애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하나의 법칙으로 초목과 인생을 함께 창조한 신의 생각이 어찌 이리도 간명한 걸까? 누구나 자연의 사계절 같은 인생을 살면서 슬프면 기쁠 때도 있는 우여곡절을 겪는 것이 우리의 삶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고난의 시기가 어쩌면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깊고 그윽한 성숙으로 이끌어 준다는 점이다.

머지않아 눈과 얼음의 겨울이, 춥고 고독한 겨울이 온다. 그 겨울 추위를 무엇으로 견딜 건가? 과연 영혼의 추위에도 그 고독을 이겨 낼 수 있을까? 모든 여건이 따스할수록 어쩌면 가슴속의 고독은 더욱 두꺼운 얼음장이 될지도 모를 일. 그 고독의 눈바람 길을 혼자서 걸어가기는 너무 힘겹고 너무 고통스러운 것. 그래서 우리는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서로가 불빛이 될 수 있다면, 친구이든, 작장 동료이든,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끼리라도 서로의 추위를 녹여 주는 따스한 겨울이 될 수 있으련만.

우리 모두 캄캄한 밤길 눈보라 속에서 따스하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우정의 불빛이 되며 살 순 없을까? 거창한 인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날의 추억, 그날의 고독, 그날의 우울을 위하여 서로가 불빛이 된다면, 아니 스치는 눈빛에 웃음 한 번 머금어 준다면, 건네는 말 한마디가 따스한 가슴의 울림이 된다면 우리 모두 우정과 애정의 인연이 될 수 있으리라. 친구여, 직장 동료여, 마주치는 그대들이여, 옷소매만 스치어도 삼천겁의 인연이라 했는데 이 겨울 서로가 불빛이 되어 주며, 따스하고 밝게 보내도록 하자. 비록 실천이 어렵다면 생각만이라도, 마음만이라도 그렇게 하도록 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