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술시다
아침이 술시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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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 (한국농어촌공사 의령지사 과장)
매주 토요일 아침은 오전 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딸내미와 작은 가게를 경영하는 집사람과 셋이서 해장국을 즐겨 먹는다. 바지락을 껍질째 넣은 콩나물해장국은 뜨거우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 좋고 작은 깍두기 김치 하나에 밥을 말은 시래기 해장국은 어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좋다. 가격 또한 집에서 먹는 한끼 식사와 비교해 큰 부담이 없고, 덤으로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보너스까지 있어 주부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의 인기를 모으는데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해장국 값은 돌아가면서 공평하게 내기로 했는데, 저번 주는 딸내미 차례라 주최 측(밥값을 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콩나물해장국을 먹게 되었다.

서둘러 간다고 부지런을 떨었지만 식당은 이미 손님들로 붐비고 빈자리가 몇 군데 남아있지 않았다. 주문을 기다리고 앉았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방안을 채우고 넘쳐 밖으로 흘러나온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소리의 주인공들은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일단의 남자들이었다. 분위기로 봐서 심각한 이야기는 아닌듯한데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콩이야 팥이야 난상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의 밥상에는 이미 내용물이 사라진 막걸리 병과 소주병이 어지럽게 늘려있고, 아침술에 이미 취기가 올라 발그레한 얼굴로 연신 머리를 쓸어 올리는 분도 보였다. ‘해장술에 취하면 아비 어미도 몰라본다’고 하는 말을 떠올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손님들도 방안의 소음에 곱지 않은 시선을 연신 보내고 있었다.

해장국 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도 토론은 끝이 나지 않았다.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을 보고 있다가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모두 녹색의 안전제일 마크와 회사이름이 찍힌 연둣빛 작업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출근할 사람들이 아침부터 막걸리를 취하도록 마신다? 아무리 애주가라 하더라도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렇다, 그들은 밤새워 생산현장에서 일을 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야간작업 근로자들이었던 것이다.

하루 중 술 마시기 좋은 시간을 ‘술시’라고 부른다. 옛날식 시간계산법으로 보면 술시(戌時)는 저녁 7시부터 9시까지이니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이 오후 6시 퇴근을 하고 7시쯤 약속을 잡아 막걸리 한 잔 씩을 나누고 헤어지는 시간이 9시쯤이니 참으로 절묘하게 갖다 붙인 것 같다. 하지만 야간 근무를 마친 해장국집의 근무복 부대는 아침시간이 술시였던 것이다. 이제 저들은 해장국 한 그릇에 막걸리 두어 사발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 단 잠에 들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그들의 소리는 더 이상 소음이 아니고 건설현장의 힘찬 망치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해장국집을 나서면서 다음 주 토요일에는 더 많은 근무복 부대가 아침 술시를 즐겼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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