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우수마발(牛?馬勃)로 여기는 정치
국민을 우수마발(牛?馬勃)로 여기는 정치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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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처음 만난 국어선생님은 책읽기를 무척 강조했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가 말한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를 설명하면서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悅乎)를 인용하고 명심보감에 나오는 소년이로학난성(少年而老學難成)으로 시작되는 한시를 외우도록 권하기도 했다. 더불어 선생님은 삼국지를 필독서로 권했다. 군웅들의 할거속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며 남아필독서라고 했다.

평소에는 여러 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삼국지를 읽을 엄두를 못냈으나 중2 여름방학 때 작심하고 삼국지 독파에 나섰다. 필독서라기에 시작했지만 일독을 하기까지는 도대체 어렵고 등장인물이 많아 머리만 어지러웠다. 재독에 들어가면서 600명에 달하는 등장인물을 위·촉·오나라별로 분류, 도표를 그려가며 읽었다. 조금은 이해가 깊어졌으나 인물분류에 급급, 책속의 깊은 교훈을 찾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삼독에 들어갔고 그제서야 인물들의 진면목과 삼국 간의 치열하고 숨가쁜 다툼 속의 흥미진진한 역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화친(和親)과 화전(火戰)이 반복되는 가운데 책사들의 기막힌 두뇌싸움이 흥미를 더했고 인물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마다않는 영웅들의 모습과 주군을 모시는 신하들의 충성심이 가슴을 울렸다. 동남풍을 이용해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제갈량의 뛰어난 계략과 팔진도를 펴 적군의 진격을 막은 전법, 출사표의 명문장은 삼국지의 압권이었다.

무엇보다 유비현덕과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조조의 용맹과 전투력, 손책의 외교술은 삼국지를 읽는 재미를 더했고 조자룡, 여포의 무예는 후세에 널리 회자되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귀가 큰 유비의 덕망은 후에 나관중으로 하여금 세력이 가장 약한 촉나라 중심으로 삼국지연의를 쓰게 한 밑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른이 되어 다시 삼국지를 두 번이나 더 읽은 것은 책속에 인생사가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 명이 등장해 명멸하는 과정이 2000년 가까이 지난 요즘과도 다를 바 없다.

장황하게 삼국지를 들먹이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 1년이 지나기 전 차기대선을 겨냥하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곳에서는 2강 체제에 회의를 느낀 세력을 규합, 3강 체제를 도모하고 있다. 그때와 지금을 견줘보면 미인계에 속아 동탁을 죽인 여포가 있고 읍참마속(泣斬馬謖)도 여전하다. 다만 칠종칠금(七縱七擒)의 휴머니즘과 인간애, 제갈공명과 같은 경국지책을 가진 인재가 없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년 내내 지속된 국민과 유리된 다툼은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3 사회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6.7%가 자신이 하층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는 이 조사가 처음 시작된 1988년의 36.9%보다 크게 후퇴한 상황이다. 계층이동이 자식세대에서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줄어들었고 1년 전에 비해 부채가 늘어난 가구수도 24.1%가 증가했다. 국민소득 2만4000달러시대,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단 1건의 민생법안도 외면한 채 진영의 이익에만 매몰돼 있으니 아마도 그들에겐 국민이 우수마발(牛?馬勃)로 보이는 모양이다.

당연히 국민들도 민생을 외면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권을 우수마발로 볼 수밖에 없다. 최근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0% 이상이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한 상황이다. 국회해산을 거론하는 시중의 여론에도 진영싸움은 신삼국을 형성하고 있다.

국민의 인내는 임계상황에 달해 있다. 민생을 외면하는 진영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신삼국시대의 승자는 정쟁보다는 열국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민생을 돌보는 진영에게 돌아갈 것이다. 국민이 그들의 편이기 때문이다. 심판의 날은 멀지 않았다. 내년 6월 4일 지방선거가 바로 심판의 날이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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