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바보로 만든 건 엄마인 나였다
아이를 바보로 만든 건 엄마인 나였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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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한국국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종종 아이가 또래들에 비해 키가 참 크다는 말을 듣는다. 가끔은 뭘 그렇게 좋은 것을 먹이냐고 물어오는 엄마들도 있어 백일부터 지금까지 중이염으로 일 년 중 300일은 항생제를 먹고 있어 농담 삼아 항생제의 힘이라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솔직히 아이의 식습관은 남들에게 이야기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만 3세 때 처음 어린이집에 간 날 식판 앞에서 입 벌리고 눈을 껌벅거리고 앉아 선생님 옆구리를 찌르더라는 말을 듣고는 웃어 버렸지만 솔직히 웃어 넘길 일이 아닌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후 몇 번 식습관을 고치려고 시도를 했었지만 결국 아이에게 지고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 먹는 아이로 영영 낙인이 찍혀 버렸다. 다른 부모들은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에게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를 묻지만, 나는 항상 오늘은 누가 가장 늦게 먹었는지를 묻는 게 일이었다.

가끔은 어린이집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떠먹일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선생님께 식사시간이 끝나기 10분 남았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정해진 식사시간이 끝나면 아이에게 점심을 안 먹여도 좋으니 그냥 식판을 빼앗아 버리라고 선생님께 단호하게 말을 한 적도 있다.

일반적으로 어린이집에서는 식사시간 이후에 자유선택 놀이시간을 정해 놓는다. 밥을 빨리 먹은 아이들에게는 그 보상적 의미가 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늦게 먹는 친구들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자유선택 놀이시간이 적절하게 운영된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장남감이나 쌓기놀이와 같이 서로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위해서 밥을 빨리 먹는 행동에 동기가 부여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에게는 별 효과가 없는 듯 보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기 때부터 뱃속에 들어간 분유보다 버린 분유가 더 많아 분유값이 아까웠고, 요리실력이 바닥인 내가 큰 맘 먹고 만든 이유식은 다른 집 아이의 입으로 혹은 어른들이 다 먹어 버려 나중에는 이유식도 그냥 사서 먹이는 것이 더 영양적으로 다양하게 먹일 수 있고 오히려 더 경제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아이가 편식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시금치, 오이, 당근, 파 등 보통의 아이들이 싫어하는 야채를 스스로 먹기도 하고 된장, 청국장 등도 잘 먹고 오히려 햄버거, 피자, 치킨, 콜라, 사이다 같은 인스턴트나 음료수를 전혀 먹지 않아 신기할 정도다. 내 친구들은 농담인지 칭찬인지 시골에 살아 그런 혜택을 본다고 말하기도 한다. 결국 아이의 잘못된 식습관은 먹는 양이 적고, 먹는 태도가 불량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밥을 먹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또 먹는 양이 적다 보니 가끔씩 자신의 양을 초과하면 불쾌감을 느껴 심할 때는 토해 버리는 경우가 있어 어쩔 땐 겁이 살짝 나기도 해 밥 먹는 일로 아이와 싸우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기도 했다.

솔직히 바쁜 출근시간이나 일하고 돌아와 저녁을 해서 아이와 밥을 먹을 때 지친 마음에 아이와 싸우기 싫어 그냥 쉽게 옆에서 떠 먹여 그 상황을 빨리 종료시키고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커 아이의 나쁜 식습관을 알면서도 묵인하면서 지금껏 유지한 것이다.

결국 내가 아이와 감정싸움을 하기 싫어 순간순간 눈을 감고 말았던 것이 아이의 나쁜 습관을 눈감아 준 꼴이고 한편으로는 식습관 빼고는 크게 문제가 될 행동이 없다고 고슴도치 같은 엄마가 되어 하나쯤이라는 쉬운 생각도 한몫을 단단히 한 것 같다. 뭐든지 처음에 잘 가르쳐야지 처음에 잘못 길러진 습관을 고친다는 것은 보통의 마음으로는 잘 고쳐지지 않는 힘든 일이 되고 만다. 아이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는 것이 아이와 감정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마인 내가 아이를 바보를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한우 (한국국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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