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외로움 눈꽃으로 피었을까
단종의 외로움 눈꽃으로 피었을까
  • 최창민
  • 승인 2013.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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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81>태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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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길같은 주목군락지를 지나고 있는 등산객
 
 
 
 
젊은 사람들은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 좋다하고 어른들은 추운 겨울이 싫다한다.

눈이 좋다 하는 것은 순백의 청순함 외에도 눈에 얽힌 갖은 추억과 환상적인 느낌, 즉 아련한 과거 가족 친구 연인들과 함께 썰매 등산 등 야외 활동으로 엮였던 추억이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고스란히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거기다 시기적으로 이벤트가 많은 성탄절과 연말, 신년이 줄지어 꿰어 있어 이런 기억이 오래토록 각인된다.

어른들이 눈이나 추운 겨울이 싫다하는 것은 눈과 추위로 인한 불편함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젊은 당신―, 젊었으되 노인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었으되 아직 청춘을 꿈꾸고 있는가!

겨울의 들머리, 설국, 강원도 태백산이 가슴에 들어왔다. 환상의 추억 여행, 꿈인 듯 현실인 듯 설국의 산길을 걸었다. 산에는 얼마 전 내린 눈이 쌓여 무릎까지 깊게 빠졌다. 1300m까지 고도를 높이자 일순간 찬바람과 가스가 몰려와 산을 뒤덮더니 주목과 피나무, 철쭉 관목류에 상고대가 착착 달라붙기 시작했다. 눈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기도 하고 얼음꽃을 따 이로 깨물어본다.

태백산은 천제단과 눈꽃, 주목이 주인이다. 이런 이유로 국립공원으로 착각하는 이가 많다. 소백산이 국립공원이니 태백산은 오죽하겠냐는 것이고, 주목이 국립공원이나 고산에서 자생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98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김연식 태백시장은 “태백산을 국립공원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주민들의 반대와 지자체의 관할권 이양의 어려움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근황을 전했다.

태백시는 작은 마을이었으나 장성탄광을 비롯해 탄광이 개발되면서 크게 번성했다. 이후 시로 승격 되고, 1980년대 도시인구가 최대 12만까지 늘었으나 석탄산업이 쇠퇴하면서 지금은 5만으로 줄었다.

▲태백산은 강원 태백시와 경북 봉화군의 경계에 있는 산. 북으로 매봉산, 남으로 소백산 대미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상에 놓여 있다. 높이 1567m이다. 지리산과 함께 영산으로 불린다. 인근에 함백산, 장산, 구운산 청옥산 고봉들이 즐비하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가 태백시내 한가운데 있으며 거기서 물이 콸콸 솟아오른다. 이 물은 한반도 남쪽을 좌우로 갈라 낙동강 굽이굽이 천 삼백리 길을 흘러 부산 앞바다에 합수한다. 인근 함백산에는 한강 발원지 검룡소도 있다. 따라서 태백산은 한반도 남쪽 젖줄의 시발점이며 그 끝에는 서울과 부산 대구라는 거대 도시가 형성돼 있다. 하늘에 제례하는 천제단이 유명하다.

▲산행은 도립공원 유일사 매표소→유일사 입구→주목 군락지→장군봉→태백산 천제단→단종비각→망경사→ 반재 당골·백단사 갈림길→백단사→도로 이용 트레킹 원점회귀 총 9km, 휴식 포함 4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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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가 핀 주목군락지

▲오전 8시 35분 태백산 도립공원 유일사 매표소에서 출발한다. 등산객 1인 2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3∼4m짜리 넓은 등산로가 펼쳐지고 좌우에는 낙엽송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

초입부터 아이젠을 챙기지 못한 후회가 들 정도로 눈과 얼음이 뒤덮여 있다. 엉덩이에 비닐을 깔고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등산객의 표정이 어린이들처럼 밝다. 주변에는 ‘미끄럼금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20여분정도 오르면 갈림길, 계속 넓은 길을 따르면 된다. 출발 50여분이 지났을까. 이 산을 대표하는 거대한 주목이 인사를 한다. 내가 ‘이 산의 주인이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덕유산 지리산 고산지대에만 있는 주목은 희귀나무로 천연기념물이다. 2000년을 산다. 이 산에는 920년 풍상을 거친 최고수령 주목을 비롯해 30년에서 수백년을 헤아리는 주목 3928본이 자라고 있다. 이외 신갈나무 피나무 거제수 분비나무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태백국유림관리소에서 보호하고 있다.

출발 1시간 20분 만에 주목군락지를 만난다. 타 지역 산에 있는 주목보다 키가 작고 세력이 많이 약해진 것이 특징. 거칠었던 주목의 일생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주목사랑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입간판이 눈길을 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수천년 이상 존재해야한다’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보는 것이 후손들을 위한 일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같이해야 할 천연자원인 것이다. 때마침 서울 수락초등학교 아이들 60여명이 재잘거리며 주목 사이를 걸어 올랐다. 한차례 짙은 안개가 휘감고 지나더니 상고대가 꽃으로 피어났다. 기이한 형태의 천년 주목에 붙은 상고대는 한바탕 꽃잔치를 펼치는 모습. 마치 동화 속 풍경이거나 혹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곳이 이 산의 사진촬영 포인트. 사진 촬영 팁 하나를 전한다. 눈 속에서 P나 A모드를 설정하고 촬영을 하면 눈이 하얗치 않고 거무튀튀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는 너무 밝은 하얀 눈이 들어와 카메라가 이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해 노출의 평균값을 계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럴 때는 노출을 0.3∼0.4스텝 정도 오버시켜주면 간단히 해결된다. P나 A모드에서도 카메라의 오른쪽 상단에 있는 ‘+,-’기능버튼을 이용해 ‘+’로 오버시키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물론 하얀 눈에다가 강렬한 햇빛까지 더한다면 +0.5∼0.7까지 상황에 맞게 노출 오버시키면 된다. 스마트폰에도 이런 기능이 있어 활용해 볼수 있다. 추운 겨울 장갑을 벗지 않고 촬영이 가능한 기능도 있다.

출발 2시간 만에 최고봉 장군봉에 닿는다.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 정도의 시리고 거센 바람이 목덜미를 헤집고 들어왔다. 상고대를 둘러 쓴 철쭉은 마치 바닷속 산호초 같다. 산에서 느끼는 바다의 감상이 신기할 따름이다.

장군봉에 ‘장군단’이 있고 10분을 더 이동하면 태백산의 중심이 되는 ‘천왕단’이 나온다. 남으로 200m를 더 내려가면 ‘하단’이 있다. 태백산에 있는 이 세개의 단을 통틀어 ‘천제단’이라고 한다. 중앙에 있는 천왕단을 편의 상 천제단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제단 안에 단군을 뜻하는 ‘한배검’비가 있다.

천제단 천왕단 갈림길에서 주릉을 타고 계속 진행하면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부쇠봉, 서남쪽으로 연장해 소백산 대미산 대간 길이다. 취재팀은 갈림길에서 왼쪽 하산 길을 택했다. 10여분 정도 비탈로 내려서면 안부에 단종비각.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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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비각


조선 최대 비운의 왕 단종. 그는 1457년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유배돼 17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1441년 단종이 태어나자 할아버지 세종은 크게 반겼다. 병약한 아들 문종을 대신할 성군으로 생각했을 터였다. 손주를 아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은 태실지의 선택에서부터였다. 전국 명당을 수소문한 끝에 태를 우리고장 사천 곤명 명당에 모셨다. 어머니를 일찍 잃고 병약한 아들 문종에 대한 걱정이 손주사랑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훗날 세종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수양대군(세조)은 1453년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을 즉위 1년만에 몰아내고 왕에 등극했다.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육지 속의 섬 영월 청령포에 가둬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추익한 전 한성부윤이 살벌한 금표비를 뚫고 단종에게 태백산 머루와 다래를 따서 지극정성으로 진상했다. 어느 날 그의 꿈에 단종이 보였다. 머루와 다래를 따서 청령포로 가던 중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오는 단종을 만난 것이다. 기이한 꿈에 놀란 추익한은 다음날 청령포로 달려갔다. 한성부윤은 거기서 단종의 비극적인 죽음을 접하게 된다. 왕의 나이 어린 17세였다.

훗날 사람들은 단종이 태백산 신이 됐다고 믿게 됐다. 그리고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산신령으로 추앙한다. 매년 음력 9월 3일 천제를 지내고 있다. 강원도에는 단종의 흔적이 많다. 이는 비운에 간 왕에 대한 애틋하고도 애절한 한민족 사람들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다. 외로운 영혼,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회·종교적으로 환생한 것이다.

단종비각 아래 망경사 절 앞에는 용정이 있다. 천제를 지낼 때 제수로 사용한 물이다. 해발 1470m,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샘물로 100대 명수 중 상위클래스에 속한다.

산행 3시간 만에 반재 갈림길에 닿는다. 갈림길에서 왼쪽 길은 백단사로 떨어지고 오른쪽은 당골, 석탄박물관으로 간다.

백단사를 거쳐 자작나무가 서 있는 임도를 따라 나오면 31번 도로를 만나게 된다. 유일사 매표소까지 회귀하면 4시간여의 산행이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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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등산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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