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배려하는 깜빡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깜빡이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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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제일 먼저 짜증나는 일은 출근길에서부터 시작된다. 자동차를 타고 아파트단지를 나서면 조그만 사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에서 달려오는 자동차가 있어서 기다리다보면 갑자기 좌회전을 하여 아파트단지로 들어온다. 그 사이 오른쪽에서 오는 자동차 때문에 직진을 하지 못하고 기다린다. 왼쪽에서 오는 자동차가 깜빡이를 켜주었다면 여유있게 직진할 수 있었을텐데 다시 또 기다려야 한다. 신호등에서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기다리다가 출발하면 어느새 오른쪽 직진차선에 있던 자동차가 앞으로 끼어들어 내 앞을 달린다. 깜빡이로 인한 짜증은 직장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일어난다.

소위 ‘깜빡이’라고 부르는 방향지시등은 운전자의 선택이 아니라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한 의무이자 약속이다. 다른 자동차가 ‘깜빡이’를 켜면, 운전자는 그 신호를 신뢰하고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도로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될 것이고 교통사고 발생률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실제로 최근 3년간 방향지시등 미사용을 포함한 진로변경위반으로 발생한 사고는 한해 평균 1만1199건이고, 사상자는 1만8000여 명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자동차 1만대 당 2.6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우리나라의 교통문화가 얼마나 후진적인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수치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모든 차의 운전자는 좌회전·우회전·횡단·유턴·서행·정지 또는 후진을 하거나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진로를 바꾸려고 하는 때에는 손이나 방향지시기 또는 등화로써 그 행위가 끝날 때가지 신호를 하여야’하며, 신호의 시기는 운전자가 차선을 변경하거나 좌·우회전하고자 하는 지점에 이르기 전 30m 전방(고속도로에서는 100m 전방)이다. 이를 위반하면 승용차의 경우 3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또한 경찰은 깜빡이 안켜기를 교차로 꼬리물기, 끼어들기, 이륜차 도로주행과 함께 교통 4대 무질서행위로 정하고 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얌체운전의 실태는 여전하다. 법규정이나 경찰의 단속보다도 운전자들의 인식의 변화가 더욱 필요하다.

최근 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지난해 교통문화지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방향지시등 점등률은 58.7%로 나타났다. 이는 2004년 77.7%에 비해 10% 이상 하락한 수치이며, 2010년 62.1%를 기록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4년에 비해 교통문화지수가 급격히 하락한 이유는 자동차 내부에 내비게이션이나 DMB 등 운전자가 조작해야 할 장비가 늘면서 운전자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때문이라 분석되고 있다. 또한 교통안전공단측은 방향지시등 점등 등 기본적 안전수칙을 지키면 교통사고를 20%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운전자들은 ‘깜빡이’를 켜고 차선변경을 하려고 하면 다른 자동차가 뒤에서 밀어붙여서 양보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진하는 것처럼 운행하다가 틈이 생기면 갑자기 끼어들기를 한다는 하소연을 한다. 이처럼 얌체운전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정체된 도로에서 차선이나 진행신호를 무시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자 하는 운전자들의 이기심과 도로에서는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익명성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결국 깜빡이를 켜지 않는 얌체운전은 도로 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교통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로 위에서의 약속인 ‘깜빡이’는 우리나라의 정치권에서도 많이 인용이 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이라는 표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우회전 깜빡이 켜고 좌회전’ 등의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도로 위에서든 정치권에서든 ‘깜빡이’는 우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약속임과 동시에 상대방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배려의 모습이다.
오창석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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