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균형
지식의 균형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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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식 (곤양고등학교 교사)
지난 50년간 시행되어진 문과·이과로 나눈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대해 관련 당국은 학생들에게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그러한 주장 중 일부는 타당하고 또 일부는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교육은 실험이 아니라 엄중한 현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타당성 검토는 큰 의미가 없다. 정작 문제는 그 제도로 해서 발생한 현상들이다.

변형생성문법 이론의 창시자인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MIT다. 세계적 공과대학에 세계적 언어학자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는 조금 의외다. MIT에는 경제학과를 비롯한 인문학 관련과도 유명하다. 왜 MIT가 세계적 공과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는지 설핏 이해되는 대목이다.

고교 교사로 재직한지 26년째인 필자는 문과·이과 구분이 학생들의 삶을 얼마나 편협하게 하는지에 대해 쭉 지켜보고 있다. 서로의 영역을 쳐다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영역에만 집중한 채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균형을 요구하기는 무리다. 문과·이과 구분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학문의 계열성을 통한 심화라지만 그 계열성의 확립이 학문의 심화에 미치는 영향은 결과론적으로 미미해 보인다. 아니 오히려 부정적 영향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 ‘통섭’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사회적·학문적 코드로 부상되고 있는데 비로소 문과·이과의 벽을 허물려는 노력이 아닌가 싶다. 공학도가 경제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법학도가 생물학적인 지식을 가지며 컴퓨터공학을 하는 사람이 인류학·고고학을 하는 사회가 오면 아마도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는 쏠림현상이 훨씬 줄어든 비교적 균형을 잡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다행스럽게도 2017년 대입부터는 문·이과 통폐합이 추진된다고 한다. 한국과 같은 고교 문·이과 분리는 일본·대만에만 있을 뿐 미국, 유럽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선 찾아볼 수 없다. 2011년에 죽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나오게 하려면 자신의 영역에도 집중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학생들을 키워야 한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완성형의 인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지만 최소한 지식의 다양성은 갖추어야 된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밝힌 ‘완전 융합’안은 문·이과 구분 없이 수능을 보는 모든 학생이 공통적으로 학습하는 모든 과목에 응시해야 한다. 출제범위도 문·이과 구분 없이 동일하다. ‘완전 융합’안에 따르면 지금의 이공계 학생들의 학력저하와 학습량의 증가를 우려하기도 한다. 또 현재의 특목고 재학생들에게 유리할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이런저런 문제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통섭’을 통한 지식의 균형은 시대의 요구이며 미래를 향한 우리 교육의 좌표임이 분명해 보인다.

김준식 (곤양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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